안녕하세요.
부동산 거상이 되고싶은
당근거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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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37개월(열기당시 18개월 쌍둥이) 아들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현재는 육아휴직 중)입니다.
오늘 문득 쌍둥이들을 키우며 지나온 시간과,
제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지난날의 도전들을 돌아보게 되어 이렇게 글로 기록을 남겨봅니다.
제가 왜 그 힘든 시기에 아이 둘을 안고 월부에 오게 되었는지,
부끄럽지만 제 무지했던 과거를 고백해 보려고 합니다.
"신축이니까 당연히 잘 나갈 줄 알았습니다"
제가 월부를 찾게 된 계기는 인생의 큰 위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 5급지에 신축 분양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 아파트이니 전세가 당연히 잘 나갈 줄 알았고,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막연한 낙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는 급격한 하락장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인근 4급지에 엄청난 입주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분양받을 때 예상했던 전세 가격보다
무려 1억 5천만 원이나 낮춰야만
겨우 나갈까 말까 한 시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피를 말리던 역전세, 그리고 깨달음
그 당시 저는 육아휴직 중이라 소득이 없었고,
남편의 월급 하나로 네 식구가 버티는 외벌이 상황이었습니다.
남편의 소득은 고스란히 주택담보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는 데 100%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저희 집은 저층(2층)이어서,
가격을 아무리 아무리 낮춰도 전세 문의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양가 시댁의 도움을 간신히 받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탈탈 털어
겨우 전세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잔금을 치르고 한숨 돌리고 나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과 함께 깊은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정말 공부해야 하는구나.
막연하게 새 아파트니까 잘 되겠지라니… 내가 너무 무지했구나.'
내가 가진 자산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고,
다가올 공급 물량을 미리 파악해서 판단했어야 했는데
저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무모하고 위험한 투자였습니다.
(이거 말고도 무지한 투자가 하나 더있지만….그건 논외..ㅜㅜ)
위기를 기회로, 월부에서 배우는 새로운 인생
하지만 그 고통스러웠던 위기가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무지한 채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절실함을 안고 월급쟁이부자들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18개월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매를 맞고 월부에 오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쌍둥이 육아를 하며 지치고 힘들 때도 많지만,
이제는 제 자산을 지키는 방법과 올바르게 운용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남편이 너무 불쌍해서…"
그렇게 절실함을 안고 월부에 입성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처음 열기(열반스쿨 기초반)를 들을 때는 오프라인 임장이 없었고
가벼운 미니 임장만 있었는데도, 도저히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혼자서 지옥 같은 쌍둥이 육아를 고스란히 해내야 할 남편을 생각하니
너무 불쌍하고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몇 개월 동안은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보며 강의만 귀로 들었습니다.
24년 12월에 열기를 들으면서도 마음속 한편에는
늘 임장에 대한 갈증과 두려움이 공존했습니다.
25년 3월 서투기, 마침내 시작된 나의 첫 임장
제 인생의 진짜 터닝포인트는 25년 3월,
서울투자기초반(서투기) 오프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참 다행히도 그 무렵 아이들이 22개월쯤 되니,
신기하게도 말귀를 조금씩 알아듣고 표현도 하기 시작하고
아이들이 자란 만큼 제 마음속에도 '이제는 나갈 수 있겠다'라는 작은 용기가 생겼습니다.
조원분들과 발을 맞춰 주말 임장을 가기로 결심한 날,
남편은 오롯이 독박 육아의 짐을 짊어졌습니다.
주말에 고생할 남편에게 미안함이 쏟아졌지만,
우리 가족이 과거에 겪었던 그 처절한 패배감과 무력감을
다시는 되돌리고 싶지 않았기에 악착같이 해낸것 같습니다.
무작정 육아를 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짜내어
남편과의 가사·육아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평일에 더 집중해서 아이들을 보고, 주말 임장을 가기 전
철저하게 준비해 두는 식으로요.
남편도 저의 그 절실함을 알기에 기꺼이 제 뒤를 받쳐주었습니다.
25년 10월, 첫 실전반 광클 성공과 '친정 찬스'의 현실
그러다 저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5년 10월, 그 어렵다는 첫 실전반 광클에 성공한 것입니다!
기쁨도 잠시, 실전반의 스케줄은 기초반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첫째 주와 둘째 주 토/일요일에 분위기 임장, 단지 임장 1·2,
그리고 튜터링데이까지 꽉 찬 스케줄을 마주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이 둘을 두고 이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지?'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행운이었을까요? 다행히 배정된 임장지가
제 고향이자 친정식구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임장지에서
숙박하며 친정 찬스를 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친정식구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아이들이 부쩍 커버린 탓에 기대만큼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남편은 연고도 없는 먼 타지에 와서 힘들게 독박 육아를 하는 격이었습니다.
장점이라곤 제가 임장을 끝내고 현장에서 바로 육아에 투입될 수 있다는 것뿐이었죠.
평일에는 회사 일로, 주말에는 타지에서 풀 육아로 지쳐가는 남편의 체력을 보니
미안함과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다음 실전반은 이대로 절대 못 하겠다.
매번 애들을 데리고 올 수도 없고 어떡하지…'
새로운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습니다.
월부콘에서 만난 귀인, 그리고 '아이돌봄 서비스'라는 신세계
막막하던 와중에 참석한 월부콘을 끝나고 내려가는 버스안에서
우연히 '호호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사정을 들은 호호님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를 꼭 이용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이 조언은 제 월부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전문 돌봄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서,
남편의 육아 부담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주말 임장을 갈 때도 남편의 숨통이 트였고,
저 역시 미안한 마음을 한결 덜고 온전히 임장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월부 생활이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좋아 나눔글을 써두었으니 관심있는분은 참고하세요
https://weolbu.com/s/L4WAaraGJa
"조장 낙방? 오히려 좋아!" 악착같이 받아낸 연속 MVP
그 이후 제 목표는 오직 하나,
어떻게든 실전반 환경에 계속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동료들에게 MVP를 받는 비결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단순했습니다.
"모든과제를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것이었죠.
매번 조장 공모에 도전했지만 계속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아! 조장 말고 내가 이 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마인드로 임했습니다.
조원들을 위해 한 발 더 뛰고,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여를 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진심이 통했을까요? 25년 12월 열중(열반스쿨 중급반)에 이어,
26년 3월 열기에서 연속으로 MVP를 받은 덕분에
그 어렵다는 실전반 2번이나 얻어, 지금 현재도 실전반이라는
최고의 환경 안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임보 발표 보고 받은 충격" ➡️ "실전반 발표자"가 되기까지
사실 처음 실전반에 들어갔을 때,
동료들이 임보를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임보와 비교해 보니 저는 말 그대로 생초보였고,
보고서에 제 생각을 어떻게 녹여내야 하는지
방법조차 전혀 몰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속으로 딱 한 가지만 결심했습니다.
'실전반에 가면 무조건 벤치마킹(BM) 3개는 뽑아서 내 것으로 만들자.'
그날 이후 저는 악착같이 따라 했습니다.
강의에 나오는 좋은 내용을 그대로 베껴서 제 임보에 넣어보기도 했고,
동료들과 튜터님께 받은 피드백이 있으면 '그다음 달 임보에 무조건 적용'했습니다.
피드백을 수용하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매달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보고서에 저만의 생각을 담을수 있었고
전임 100건, 매임100건 등 나만의 챌린지를 넘다보니
어려운 부분도 점차 자연스러워진것 같습니다.
그결과 이번 실전반에서 발표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훌쩍 커버린 쌍둥이, 그리고 7월 복직이라는 새로운 도전
매번 환경이 바뀔 때마다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또 하나의 큰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올해 7월 회사 복직입니다.
처음 월부에 왔을 때 18개월이던 쌍둥이 아들들은
어느덧 훌쩍 자라 37개월이 되었습니다.
제 품에서 뒤뚱뒤뚱 걷던 아기들이 이제는 제법 말도 잘하고
자기주장도 엄청나게 센 어린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란 시간만큼 저의 월부 연차도 함께 쌓였습니다.
사실 복직할 회사가 그리 널널한 곳이 아니라서,
과연 일과 육아, 그리고 월부 생활을 계속 병행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7월부터는 조금 천천히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실전반에서 만난 동료들과 튜터님이
제 나약해지던 마음을 꽉 잡아주셨습니다.
"여기서 쉬지 말고, 오히려 더 힘내야 한다. 할수 있다"며
진심 어린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제 안에서 무언가 모를 뜨거운 자신감이 샘솟았습니다.
어차피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고, 언젠가는 월학(월부학교)에 갈 것이고,
너무나 가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 가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 기회가 비록 내 복직 시기와 맞물리더라도,
못 해낼 건 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동료들이 말해줬습니다. 다 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해내고 있다고 말이죠.
제가 오늘 이 부끄럽고 치열했던 이야기를 길게 적은 이유는,
과거의 저처럼 '나는 왜 안 될까', '환경이 안 받쳐주는데 어떡하지'라며
고민하고 계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해보니 정말 안 되는 건 없었습니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 해낸다'라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고 결국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18개월 쌍둥이를 안고 주담대에 이자에 짖눌리던 엄마였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꿨고, 방법을 찾아 환경을 구축했으며,
이제는 복직과 성장을 동시에 준비하는 단단한 투자자가 되었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는 남편과 우리 조원들, 튜터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복직 후에도 이 환경을 절대 놓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해낸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월부유니에서 만나길 바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성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