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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 하지만 니체는 “진정으로 나를 파괴하지 못한 고통은 결국은 더 큰 힘으로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p24. 고통조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인생은 진짜로 가치 있어진다. 물론, 누군가는 도덕성을 부정하고 익숙한 사고방식을 뒤흔든다며 비판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삶이 반드시 도덕적이어야만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선택들이 우리를 시험한다. 그 덕분에 인생은 훨씬 흥미롭고 다채로워진다.
p30. 강한 사람은 ‘좋은 날’ 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불안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배움을 찾고, 어려운 순간에도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
세상은 항상 내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설령 내 마음대로 돌아간다해서 항상 행복하지도 않다. 결국 모든 일에 있어 과정에 있고 어쩔 수 없이 고통은 있을 수 밖에 없다. 과거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단점을 자책했고, 채찍질하며 스스로 성장했다. 우스갯소리로 동료분의 "고통=성장" 이란 표현이 제게 큰 힘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성공과 성장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라온다라는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고통이 당연하다라는 말과, 내가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다르다 생각한다. 누군가는 고통을 편히 넘어가는 반면, 누군가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 통렬히 느끼고 성장한다. 물론 둘 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의 경험 상 고통을 받아들이는데도 마음의 수련이 필요한 듯하다.
고통은 행복한 과정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과정이고 직면해야 한다. 고통을 그저 넘기면 부정적인 감정만 남는다. 고통을 직면하고 들여다봐야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다. 과거엔 고통을 그저 수습하기만 바빴는데, 요새는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지?"
p39. 여기서 중요한 건 겉과 속을 구분하는 일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가짜가 되지 않는 것’ 이다. 사람들은 흔히 진짜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내가 진짜인가 하는 것이다. 스스로 단단한 존재가 되라.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남이 아닌 내 안에서 ‘진짜’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니 반짝이는 것에 휘둘리지 마라. 남들이 만든 가짜를 구별하기에 앞서, 내가 가짜가 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p43. 진짜 깨달음은 때로는 불편하고, 원치 않는 답과 마주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그 불편함이야 말로 우리를 성장시키고,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게 한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남들이 만든 가짜' '내 안에서의 진짜'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진짜가 아닌 것, 그 이전에 가짜와 진짜는 무엇인지. 얕은 경험과 지식으로 이해한 바는 내가 생각하는 진짜는 '옳다고 믿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에서 벗어나, 남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나눠주는 기버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이전에 생각했던 진짜는 '연봉'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연봉을 추구하다보니 욕심이 끝이 없었다. 더 좋은 회사, 더 높은 직책. 그에 수반되는 나와 맞지 않은 자리, 책임들. 물론 이것이 가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가짜였다.
요즘 생각하는 진짜는 '기꺼이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출근길에 어떤 여성분이 무거운 것을 낑낑대면서 옮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예전 같으면 그냥 내 갈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텐데, 무의식적으로 '도와드릴까요?' 가 나왔다. 그분의 정중한 거절에 돕지는 않았지만, 내 작은 선행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삶에 대해 진짜 내가 원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 또한 불편함이 수반된다. 나의 것을 챙기지 못한 채 상대방을 챙기는 것. 여전히 부대 끼는 구석이 많다. 그러한 순간들에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조언을 구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 반복된다. 방향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아가면 될 것 같다. 물론 이 과정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짜라 생각하고 기꺼이 해나가겠다.
p61. 흔들리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나 그것을 견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흔들림 속에서 더 높이 오를 길을 찾아야 한다. 삶이 멈춰선 듯 보이거나, 오히려 과거로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혼란의 시기가 없다면,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기회를 잃는다.
p66. 삶은 질문으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그 해답을 찾아가는 노력과 답을 찾지 못해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용기에 있다.
최근 유디 튜터님께서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하는 것. 사실 나는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하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들이 다 짜여져 있고 주어진 것들이었다. 생각보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들은 제한적이었다.
대학, 취업, 회사 등 모든 것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 월부의 생활 역시 짜여져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저 이게 맞다라고 생각하는 영역들을 기계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물론 이게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맞고, 성장 단계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익숙해지고 지루해진다. 진실의 순간, 흔들리는 순간이 온다.
이 때 필요한 건 '질문'이다. 최근에 봤던 영상 중에 일론 머스크가 얘기했던 '질문'의 중요성이 인상깊다. 학생 때는 정해진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삶을 살아가다보면 '적절한 질문' 이 중요할 때가 더 많은 듯 하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최근 들은 생각은 사람은 맹목적인 어떤 정체성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누군가는 높은 연봉, 임원이 될 수 있고, 누군가는 어떤 아이의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정체성이 없다면 기나긴 인생을 표류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기버의 삶을 정체성으로 택하기로 했다. 내 아이의 아빠도 물론 너무나 행복한 일이지만, 내 삶은 온전히 내 삶이고, 누군가에 의해 내 행복이 의존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눔 역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의존될 것이다. 하지만, 나눔 자체가 행복이라면 내 행복은 철저히 독립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눔 자체를 행복해하는 사람인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게 바뀌고 있는 듯 하다. 계속해서 스스로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유대는 우리를 성장시키지만, 그 출발점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데 있다. 자신을 모른 채 타인을 이해하려 하면 쉽게 지치거나 무너질 수 있다. 반대로 스스로를 존중할 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훨씬 큰 만족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건, 남을 짓밟아서 얻는 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기쁨은 일시적일 뿐, 결국 더 큰 상처만 남긴다.
대신 내면의 충만함을 키워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타인의 불행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진정한 자유는 남을 억누르지 않고도 내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상태다. 그 자유는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내면의 성장과 만족으로부터 온다.
비교의 끝에는 불행이라 생각한다. 비교는 끝이 없기 떄문이다. 결국 스스로 충만함을 느끼는 것,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가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연봉, 직위 등이 있겠다. 하지만, 그건 남들의 평가 지표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나의 가치는 물질적인 것보다, 무형의 것에 더 가깝다 생각한다.
진정한 선함은 억압이 아니라 자유에서 온다. 자연스럽게 남을 돕는 작은 행동,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배려 같은 것들이 진짜 선함이다. 그런데 금욕주의자는 선함을 통제와 희생으로 바꾸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그 감옥 안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자신이 선의 최고점에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면 선함은 더 이상 따뜻한 마음이 아니라 의무적인 ‘수행 과제’가 되어버린다.
진짜 선함은 강요된 행동이 아니다. 내 행복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남의 행복을 돕는 자유로운 행위다. 마치 봄이 오면 저절로 피어나는 꽃처럼, 선함이란 애써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것이다.
최근 불편함의 순간이 있었다. 나름 챙길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부담이 되었고, 특히나 일정이 많아지거나, 내가 도움을 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부대낌이 있었다. 그리고 솔루션이 과연 있을까? 생각도 했다. 이 부분에 있어 과거로 돌이켜보면, 똑같이 도움을 줄 수 없다 생각했어도, '이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라는 생각에 더 치열하게 도움을 주려고 했을 때는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다. 결국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돕고 싶은가에 대한 마음의 문제였다.
나눔이 곧 이타심, 그리고 이기심과 반대되는 개념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같이 갈 수 있다 생각한다. 내 것을 챙긴 채, 남을 돕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한다. 희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을 통해 내가 바뀌고, 조금 더 나은 삶, 세상으로 바뀌게 되면 이제 그것은 직업이 이니라, 천직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무언가 적용할 점을 찾기보다, 사유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적용해야 할 점은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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