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폴코스 200회 완주한 아버지에게서 배운것

26.06.20 (수정됨)

안녕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내와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는 자이코 입니다.


오늘은 투자 이야기가 아니고, 제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래는 아버지께서 100회 마라톤 클럽 동호회 게시판에 작성하신 글입니다. 

 


2007년 9월 9일, 제7회 강화해변 마라톤 대회.

 

아침에 일어나니 천둥번개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달리는 데 어려움이 많겠구나 생각하며 집을 나섰는데, 대회장에 도착하니 맑게 갠 깨끗한 날씨.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따가운 햇살과 솔솔 불어주는 바람이 달리면서 흘린 땀을 적당히 씻어주었고, 강화 해변도로를 따라서 달리는 기분은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3시간 43분 22초로 결승선을 넘었습니다.


2007년 공식 마라톤 풀코스 200회 완주를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달성 하셨습니다.


50세에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57세에 그 기록을 세웠습니다.


아버지는 남들이 체력 관리를 시작할 나이도 아니고, 오히려 은퇴를 준비할 나이 50에 42.195km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3월 4일, 제4회 서울마라톤대회에서 4시간 35분 19초. 그게 아버지의 첫 번째 풀코스였습니다.


거기서 6년 6개월 6일 만에 200회를 채웠습니다. 100회 때 보스턴마라톤에서 찍은 3시간 49분 48초보다 6분 26초를 더 줄이면서. 

 

아버지는 평범함 공무원 이셨습니다. 체육을 전공하신 분도 하니고, 운동을 좋아하시는 분도 아닌 진짜 평범한 동네 중년 남성 이셨습니다. 


그런 평범한 아버지가 50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셔서, 공식 기록이 인정되는 풀코스 마라톤을 2주에 한번꼴로 참가 하셨습니다. 


그냥 혼자 달린 게 아닙니다.


공식 기록이 인정되는 대회에 직접 참가해서 완주해야 카운트됩니다. 대회 등록하고, 전국 각지로 이동하고, 42.195km를 뛰고, 기록 인증을 받고. 한국에서 대회가 없는 주에는 일본, 독일, 미국까지 원정 마라톤을 다니셨습니다.


그걸 7년 동안, 2주마다 반복하신 겁니다.


아버지의 루틴은 이랬습니다.

 

  • 매일 아침 6시, 1시간 수영
  • 매주 수요일, 새벽 5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시간 마라톤 연습.
  •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한강시민공원에서 1시간 이상 사이클.
  • 주말은 전국의 명산을 찾아 등산으로 체력을 단련 혹은 2주에 한번씩 마라톤 대회에 참가


이걸 매주, 매달, 매년 반복하신 겁니다. 7년 동안.

 

"전력 질주하지 마라. 70%로 뛰어라. 그래야 부상 없이 오래 달릴 수 있다."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대회에 나가면 전력 질주하지 않고 70%의 실력으로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셨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자주 대회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빛나는 게 아니라, 계속 달리기 위해서. 그게 아버지의 철학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공주 산촌에서 태어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뛰어다닌 덕분에 기본 체력이 단련된 몸"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체력만으로는 200번을 달릴 수 없다는 걸.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의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몸을 움직이는 습관, 그리고 한 번 정한 목표를 끝까지 밀고 가는 추진력. 그게 200이라는 숫자를 만든 겁니다.


아버지가 200회 완주 후 쓰신 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달리는 그 순간 모든 근심과 번뇌를 털어버리며 마음을 비울 수 있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번에도 해냈구나 하며 가슴 벅차게 느껴오는 환희의 성취감에서 행복과 기쁨을 맛보는 재미."


57세의 아버지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달렸을 뿐이라고요.

 

“특별한 사람만이 풀코스 200회를 완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을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누구나 다 가능한 일입니다. 열심히 달리십시오.”

 


그 아버지가 15년 전,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습니다.


고관절 골절로 인해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200번의 결승선을 넘던 그 다리에 인공관절이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였습니다. 인공관절로도 하프 마라톤을 뛰셨습니다. 풀코스는 못 뛰어도 달리는 건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그게 아버지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하나둘 쌓였습니다. 몸도, 상황도, 여러 가지가 겹쳤습니다. 한 번에 무너지신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주저앉으신 겁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운동장에 나가시던 분이, 점점 집 안에만 계시게 됐습니다. 전국의 산을 누비시던 분이, 현관문 밖을 나서는 것조차 어려워하셨습니다. 한강에서 사이클을 타시던 분이,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계십니다.


마침내 우울증이 오셨습니다.


200회를 달릴 때의 그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는 같은 분인데 다른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다는 무력감이 찾아옵니다.


한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관리에 부단한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라고 쓰시던 분이, 지금은 목표 자체를 잃어버리신 것 같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월부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저의 정체성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압니다. 제가 왜 이렇게 행동력이 있는지. 왜 뭔가를 결정하면 바로 움직이는지. 왜 안 되는 것도 일단 부딪혀 보는지. 왜 거절당해도 다음 날 또 전화를 거는지. 왜 새벽에 일어나 임장을 나가는 게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은지.


그건 제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50세에 마라톤을 시작하셔서 57세에 풀코스 200번을 완주하신 아버지를 닮은 겁니다.


200번의 풀코스를 완주하는 데 필요한 건 재능이 아닙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것,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몸을 움직이는 것, 전력 질주하지 않고 70%로 꾸준히 달리는 것, 그걸 6년 넘게 반복하는 것. 아버지가 그렇게 사셨고, 저는 그걸 옆에서 봤습니다.


40이 넘어 나이를 먹고 많은 걸 배우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이렇게 반듯하게 클 수 있었다는 것을요.

 

아버지가 보여주신 삶의 방식이 제 안에 그대로 심어져 있었다는 걸. 저는 그걸 물려받은 겁니다. 돈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행동력과 추진력. 그게 아버지가 제게 주신 가장 큰 유산입니다.


투자를 하면서, 임장을 나가면서, 안 되는 일에 부딪힐 때마다 저도 모르게 아버지처럼 합니다. 

 

일단 움직입니다. 전력 질주는 안 합니다. 70%로, 부상 없이, 오래 달립니다. 한 번의 성과가 아니라 계속 나가는 것. 그게 아버지가 제게 가르쳐주신 겁니다.

 


아버지.


지금은 달리지 못하시지만, 아버지가 달리신 200번의 결승선이 제 안에 살아 있습니다. 아버지의 지난 시간 실행하셨던 행동력이, 추진력이, 포기하지 않는 힘이 저를 계속 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더 이상 결승선을 넘지 못하셔도, 저는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성실함의 다리로 계속 달리겠습니다. 투자에서도,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전력 질주하지 않고, 70%로, 부상 없이, 오래 말입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계셔 주세요. 제가 자본주의에서 행복하게 달리는 모습을 오래오래 봐주세요.


그리고 아버지, 저희 둘째 보셨죠.


말랐지만, 뒷모습이 아버지랑 거의 똑같이 생긴 그 녀석. 

 

외골수처럼 BMX 자전거 하나만 붙잡고 매일 트랙을 도는 놈입니다. 할아버지를 닮아서인지, 한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해냅니다. 넘어져도 울지 않고 다시 올라탑니다. 30도가 넘는 날에도 트랙에서 훈련을 합니다 .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아, 이게 대물림이구나.

 

아버지가 200번 결승선을 넘으셨고, 저는 지금 제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고, 제 아들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습니다.


언젠가 3대가 함께 5km를 달리는 날을 꿈꿉니다. 아버지는 걸으셔도 됩니다. 저는 둘째 옆에서 페이스 맞춰 뛰겠습니다. 결승선에서 셋이 같이 웃으면 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76번째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다음주 토요일에 아이들과 다 같이 방문 드리겠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이코 드림


댓글

당근거상
26.06.20 10:23

너무 멋진 아버지 아들 그리고 딸이네요👍👍

날개핀레드불
26.06.20 10:49

멋진 아버님의 유전을 받으셨군요 멋지십니다 :) 다음주 아버님과 좋은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성장구루
26.06.20 12:07

뭉클하네요🥹 아버님의 행동력과 강인함을 3대가 물려받으셨네요! 덕분에 70%의 에너지로 꾸준히 해나가는 이코님께 많이 배웁니다!! 다음주에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