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기간에 집을 보러 다닌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매물을 100개 가까이 봤습니다.
주말마다 걸었고, 부동산도 여러 곳을 돌았습니다. 그런데 계약은 못 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3개를 봤습니다. 그리고 계약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더 많이 알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주말 당직이 많은 직장이라 시간이 오히려 부족했습니다.
예산 안에 남아 있던 매물도 좋지 않았습니다. 저층이거나, 1층에 음식점이 있는 동이었습니다.
차이는 정보량이 아니었습니다.
순서였습니다.
왜 100개를 보고도 못 고르는가
집을 사려고 마음먹는 순간 대부분 세 곳에서 막힙니다.
지금 사도 되는가.
내 예산과 대출 한도는 얼마인가.
이 돈으로 어떤 단지를 봐야 하는가.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거의 같은 순서로 질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가 하나 더 있습니다.
기준은 생겼는데 실행에서 멈추는 구간.
이게 가장 아픈 자리입니다.
앞의 세 가지는 공부하면 답이 나옵니다.
네 번째는 공부해도 안 됩니다. 순서를 안 정했기 때문입니다.
순서가 없으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후보 단지 1순위를 놓아둔 채 3순위부터 매물을 봅니다.
호가가 낮은 매물만 골라 봅니다.
조급할 이유가 없는데도 협상을 서둘러 끝냅니다.
100개를 봐도 못 고르는 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100개가 비교 가능한 형태로 쌓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서를 지킨 사람에게 생긴 일
지난 여름 두 분의 수강생분의 내집마련 결과를 전해들었습니다.
한 분은 1순위로 봐둔 지역에 매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순위를 미리 만들어뒀습니다.
그 지역으로 옮겨 세 단지의 매물 10개를 이틀에 걸쳐 다 봤습니다.
그리고 1순위로 정한 매물에서 1,300만 원을 깎았습니다.
말솜씨가 좋았던 게 아닙니다. 못 깎으면 다른 단지를 사면 됐기 때문입니다.
대안이 있으니 여유롭게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분은 부동산 여러 곳에서 예산을 올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흔들렸다고 씁니다.
그런데 직전 거래가와 전고점을 하나씩 다시 확인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는 아직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결과는 직전 거래보다 1억 2천만 원 낮은 매수였습니다.
이분은 그 전에 목표 단지가 눈앞에서 2억 8천만 원 오르는 걸 봤습니다.
포기하고 예산 안에서 후보를 다시 짰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판단했다고 적어두셨습니다.
두 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지역도 다르고 상황도 다릅니다. 그런데 같은 지점을 가리킵니다.
여유는 성격이 아니라 준비의 결과였습니다.
'한가하게'라는 말에 대해
이 시리즈 이름을 한가한 내집마련으로 정했습니다.
수억 원이 오가는 일에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들릴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한가함은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조급하지 말라는 조언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조급한 건 태도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한가함은 다음에 할 일을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1순위가 날아가도 2순위가 있으면 당황하지 않습니다.
중개사가 예산을 올리라고 해도 확인할 숫자가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잔금일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 밤에 잠이 옵니다.
앞의 두 분이 여유로웠던 이유가 이것입니다.
앞으로 16주 동안 다룰 순서
이 시리즈는 네 단계로 갑니다.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입니다.
1단계 기준. 지금 사도 되는지, 거주와 투자 중 무엇을 먼저 볼지, 집을 보는 기준 6가지.
2단계 예산. 한도를 다 채운 예산을 왜 내려야 하는지, 예산에서 빠지는 돈.
3단계 선택. 1순위와 2순위를 동시에 만드는 법, 조건 하나만 빼고 비교하는 법, 예산 안에 좋은 매물이 없을 때, 이틀에 10개를 보는 루트.
4단계 실행. 예산을 올리라는 말에 답하는 법, 협상, 가계약, 특약, 토지거래허가와 자금조달계획서, 잔금, 등기.
이번 주에 할 일, 하나만
종이에 후보 지역 두 곳을 적어보세요.
한 곳이 아니라 두 곳입니다.
한 곳만 정해두면 그 지역에 매물이 없을 때 갈 곳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조급해지고, 조급해지면 값을 더 냅니다.
정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아는 만큼만 적으면 됩니다.
다음 주에 이 두 곳을 판단하는 기준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집값이 앞으로 오를지 내릴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순서를 정한 사람과 정하지 않은 사람의 결과가 달랐던 건 분명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