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후기

[후바이] 독서후기 / 자존감 수업

  • 25.06.16



느낀점

생각보다 자존감이 굉장히 낮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역치가 정말 높은 이유도 알 수 있었던 책이다. 느낀점을 쓰면서도 왜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책에선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ㅋ)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석하려 드는 그래서 알고 있어야한다는 '오만'한 생각이 내 자존감에 좋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되어 다행스럽다.

 

내가 뽑은 키워드

#그러면 좀 어때 #감정인식 #보여지기 위한 노력

 

한 문장으로 요약

보여지기 위한 노력을 하지말자.

 

다시 읽어야 할 때

스스로의 감정인식에 궁핍할 때

나도 모르게 '나는 왜'를 달고 살 때

 

기억할 문장

감정을 인식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왜 나는 이 모양이지?’라는 질문으로 자신을 비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 없다. 단지 ‘나의 핵심 감정이 오늘도 폭발하는구나!’ 하고 감탄하면 된다. ‘왜?’라는 질문은 상처를 주기 쉽지만 감탄은 자신의 감정을 짚고 넘어가게 만든다.

 

벤치마킹 / 느낀점

1) 목실감에 추가 할 감정인식

매일이 어렵다면 매주 그날 또는 그 주의 감정이 어떠했는지를 적어봐야겠다. 그래서 왜? 에서 왜 나만?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2) 그럴수도 있지

사람에 대해 또 사회적 현상에 대해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같이 디테일하게 파고드려는 노력을 줄여야하는데 그러려면 흘려 보냄과 그냥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복기를 한답시면서 자존감 훼손을 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자. 그럴 수도 있지

  •  

 

 

 

인상 깊은 문구

 

PART.1 자존감이 왜 중요한가?

 

 

사람만 바뀐 것이 아니다. 세상은 어느새 너무 많은 것을 묻고 요구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길로 갈 건지, 얼마의 속도로 갈 건지 수시로 묻고 확인한다. 결정할 것도 많아지고, 답을 내야 할 것도 많아졌다. 당연히 혼란스럽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모르겠어요”라는 고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질 못한다. 그리고 그 고민을 물고늘어지느라 가진 에너지를 소모한다. 보고 들은 것은 많고, 그에 따라 질문과 고민은 많아졌는데 답을 찾을 수 없으니 참으로 답답한 세상이다. 정보가 폭발하면서 우리는 고유의 정체성조차 비교당하고 산다. 내가 하는 생각, 살아가는 과정, 판단, 결과 들도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마음 한구석에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을 안고 살아간다.

▶ 투자에 정답이 없든, 인생에도 정답은 없다. 영원한 게 없고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곧 지혜니까. 이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만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많이 알든 조금 알든 본인의 성장방식. 본인의 경험만이 옳다고 생각할테니까.

 

 

 

PART.2 사랑 패턴을 보면 자존감이 보인다

 

[가장 가까운 친구는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이의 인생은 상당히 수월해진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마치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함께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외로움이 찾아와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혼자 여행을 가서도 마치 둘인 양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위안이 되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고 격려할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이 했던 어떤 행동을 되짚어보며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근심과 불안에 빠질 일이 없다.

▶ '3-4년간 내 자신은 없다'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하고 우스운지 이제는 돌아보게 된다. 그만큼 몰입이 필요한 구간이 필연적으로 있어야하는 것은 맞지만, 휘느니 부러지겠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원씽을 투자, 가족, 업무에서 정할 것이 아니라 나. 나의 자존.이 원씽이 되어야한다.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해낼 사람은 가족도, 회사도, 투자 경험도 아닌 이 모든 것을 해야하는 나니까.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자]

인생을 조금 편하게 살고 싶다면 평소 자신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해줘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남들과 경쟁하고, 비교하고, 비난당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이상하고 부족한 사람으로 매도해왔다

▶ 일상 생활에서 대부분 학업적, 업무적, 사회적 커리어가 있다. 그런데 투자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는 지나치게 디프레스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많다 ..^^* 간절함이 결과에 보답해 주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이 방법은 빨리, 잘 해야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닌 오래해야 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빨리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고 빨리 이 생활을 끝내고 빨리 노후를 준비하고 싶다는 마음이 종이 한장 차이로 그 과정을 하는 내 자신을 갉아먹는 길로 갈 수도 있음을 자각하자

 

[ 잘 사랑하기 위한 기초 공사]

사랑을 할 때 상대와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다. 나에 대한 확신이 약하면 상대를 생각해야 할 때 나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해야 할 때 상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반복한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시점을 조금 바꿔야 한다. 옷을 고르거나 미용실에 갔을 때도 ‘어떻게 하면 그의 마음에 들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마음에 들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지나치게 타인의 관점에서 평가받고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고 주체적이 되어야 한다.

 

[미움받을까 두려워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

막상 뒤돌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은 우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진짜 친해졌다는 느낌을 주기가 어렵다. 인간관계라는 게 좋은 모습만 보이면 쉽게 친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말 친한 관계란 나쁜 모습도 용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보여지기 위한 노력을 하지마세요. 보여지는 것이 변하면 마찬가지로 잃게될 호의, 관계, 지위, 성과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예방주사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방주사가 아니다. 거절이라는 병균이 침임했을 때, 항체가 되어 싸워야 할 자존감을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이 핵심 감정이 되어 폭발해 버리고 만다. 자기 머릿속의 오류들을 수정할 기회가 날아가 버리는 셈이다.

▶ DOn't Think Too Much

 

[자기 자신에게 사과하기(자존감 향상을 위해 오늘 할 일)]

오늘 저녁엔 거울 앞에 서서 사과를 해보자. “미안해.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나를 미워했어” “미안해! 안 그래도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 그걸 숨기려고 했어. 당당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라고 소리 내 말하자. 우리는 그동안 자신에게 만족을 못했다. 나를 그대로 받아주지 못했다. 우리의 외모를 사랑하지 못했고, 성격을 불만스러워했고, 처지를 비관했고, 처한 현실을 부끄러워했고, 꿈을 숨겨왔다.자신에게 참 미안한 일이다. 따라서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자존감이 낮았던 ‘과거의 나’와 노력 중인 ‘현재의 나’의 차이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PART.3 자존감이 인간관계를 좌우한다

 

[나는 얼마나 인정받고 있을까]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또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로 인정받거나 사랑받아야만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란 반드시 누구에게 인정받아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과연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에너지를 일으킨다. 이 방법은 꽤나 중독성이 있어서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이 방법을 쓴다.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내는 쓸모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해’라는 생각을 하며 나를 다그치고 있다. 문제는 이 방법만 가지고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정해진 한도의 에너지를 넘어가면 이 동기부여는 불안과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좋은 책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묶여 한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독자들에게 훈계를 하는 나를 발견했고, 결국 판매가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겹쳐 글쓰기를 전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궈서야 되겠나

 

[평가가 아닌 과정에 몰입하라]

우리는 여러 사회에 동시에 속해 있다. 직장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가정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가정에 몰두하면 직장에 문제가 생기기 십상이다. 배우자에게 잘 인정받으려 하다가 부모님과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가 가진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애당초 모든 면에서 가치를 인정받기란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답은 과정에 있다. 과정에 몰입하면 된다. 평가는 나중의 일이고 과정은 현재의 일이다. 과정에 집중한다는 건 결국 오늘 할 일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일이다. 가령 취업을 하고 싶다면 취업을 하기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해야 한다

과정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결과가 나쁘더라도 상처가 적다. 비록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은 훌륭했다는 만족감이 남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내가 내 마음에 얼마나 드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러기 위해선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자신의 평가’에 집중해야 한다

▶ Conect To Dot, 엄청난 과업이나 결과 성과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성실하게 집중하며 쌓아간 찰나, 하루, 한 주, 한 달이 모여 미래를 만들고, 지금의 나 역시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게 가능하겠어? 되겠어? 했던 것들을 꽤나 많이 이루면서. 그리고 보여지기 위한 노력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스스로에게 잘 보여지도록 해야한다. 결국 잘해야한 다는 것. 잘해야 재미도 느끼고, 재미 있어야 오래 할 수 있고, 오래해야 타인에게도 ㅇㅋ?

 

[직장 만족도, 직업 만족도, 자기 만족도를 구분하라]

직장은 힘든 곳이다. 그래서 월급을 준다. 그것도 날짜를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준다. 안 그러면 남아 있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이 그렇게 달콤한 곳이고 가치 있는 곳이라면 우리에게 돈을 줄 리 없다. 미안하니까, 나가지 말라고 돈을 쥐여준다.

 

직업에는 만족하지만 근무하는 직장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직업은 별로지만 지금 일하는 직장은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과 인생은 분리해야 한다. 우리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이 우리 삶의 전체가 아니다.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현재 자신의 인생까지 불만족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회사에서 조금 잘 나간다고 타인의 자존심을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 기분이 어떻든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성공은 사회적 가치를 획득하는 행위]

보통의 경우 타인의 낮은 시선은 그대로 자신에게 투사되어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을 보자. 가족에게 내가 필요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 자존감은 가차 없이 흔들린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건 아닐까?’ ‘나 같은 자식은 있으나마나한 존재야’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에서 자존감을 지키기란 매우 어렵다.

▶ 타자분리, 신경끄기가 중요한 이유

 

[내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다]

신의 사회적 가치를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을 어느 한 가지에서만 찾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지만 부모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회사원이지만 직장을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자식이자 배우자고 부모이며 직장인이고,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동호회 회원이며, 친구이자 아파트 주민이고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다. 이 많은 역할 정체성 중에 어떤 것에서는 자존감이 낮고 어떤 것에서는 자존감이 높을 수 있다. 자녀에게는 무뚝뚝한 아빠지만 아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남편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는 평범한 대리이지만 동호회에서는 최고의 리더일 수도 있다. 어차피 모든 역할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어떤 한 가지 정체성에서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직장인인 내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나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 며느리로서 내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직장인으로서의 나까지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어느 한두 개에서 소홀하다 해도 연인으로서, 친구로서, 부모로서, 자원봉사자로서, 종교인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존재는 남아 있다. 한 곳에서 존재감을 확인받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의 문제로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 타나 분리 만큼이나 세상에서 바라 보는 나 역시도 인칭 분리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지 않을 수 있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어야 할 사람이 곧 나니까.

 

[결정을 잘하기 위한 조건 세 가지]

세 번째는 세상에 ‘옳은 결정’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했다 해도 그게 후회할 결정인지 만족할 결정인지, 결정 당시에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시 최선의 결정이었다 해도 훗날 후회스러운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대충 결정한 일이 엄청난 행운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 결과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신의 뜻을 모른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그래서 생겼을 게다.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알고 있다. 어떤 문제를 아무리 고민해봐야 정답은 없으며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어떤(what) 결정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정한 후에 어떻게(how)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결정하기까지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지 않는다.

▶ 정답은 없다. 너나위님도 제자들이 하도 물어 이야기 해주셨던 단지들이 대부분 틀렸다고도 하셨다. 하지만 순위가 틀렸을 뿐 모두 투자 했다면 벌 수 있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결국 최고의 선택은 없고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고,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되도록 만들어 가는 것만이 나의 몫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내 선택은 당연하고 주변의 선택에도 마찬가지다. 투자 외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

 

[결정할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은 맞는 답만 찾느라 분주하다. 충분히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이 정립되기도 전에 괄호 안에 들어갈 정답을 찾는 데 골몰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생각이나 감정은 뒷전이고 수학, 과학 문제의 정답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아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성적인 답 고르기에 익숙해진다

▶ 정답찾기식에 익숙해진 우리, 그리고 나 > 이것이 나와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선택과 결정에 앞서 신중함이 정답찾기식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불행했던 과거와 거리 두기 혹은 떠나보내기]

이성에게 호감이 생기면 때를 놓칠세라 부모가 상처 준 얘기를 꺼내고 동료에게 따돌림 당했던 기억을 털어놓는다. ‘이런 나를 이해해줘’ 혹은 ‘이렇게 꼬이고 불쌍한 나를 감당할 수 있겠어?’라는 심리의 일종이다. 자기 어깨에 붙은 불을 사무실이나 애인의 집에 옮겨 붙이는 셈이다.

모든 아픔은 과거형이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힘으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시간을 돌이키는 일이다. 어차피 시간은 흘러가게 되어 있다. 아팠던 과거와 현재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선물이 들어찬다. 이 선물은 세상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 선물을 애써 거부할 까닭이 있을까? 기꺼이 받아 챙겨야 하지 않을까?

 

[망각을 더디게 하는 말 "왜 나만?"]

따라서 자신이 겪은 특이하고도 나쁜 경험을 잊고 싶다면 감정으로 연결되지 않고 저절로 가라앉도록 가만두어야 한다. ‘왜 나만?’ 혹은 ‘난 왜 이렇게 됐을까?’ 같은 질문은 멈추자.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자동으로 나쁜 기억이 떠오르고 나쁜 감정이 딸려 올라온다. 그것이 반복되고 정도가 심해지면 자신을 고립시키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색해질 수도 있다.

 

[지나친 친절이 폄하되는 이유]

이 남자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항상 타인에게 친절하고, 도와주라는 말과 함께 “남들이 뭐라고 하겠니?”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이었다. 남자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정작 소중하게 여겼던 연인은 매번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이 친절한 남자는 남에게는 친절했지만,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에는 서툴렀다. 자기 시간, 자기 행복,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이런 경우 자신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도 소홀히 하는 습관이 생긴다.

현대 사회에서 이 남자처럼 자기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서 남 신경만 쓰는 사람은 남에게도 오히려 부담을 준다. 은연중에 우리의 기억 속에는 몹시 친절한 사람들의 어떤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식적으로 느껴 오히려 불편하든가, 친절하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치든가,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당신도 이만큼 줘’라는 태도를 보였던 사람이 떠오르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지나치리만큼 남을 배려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보면 ‘자기도 저만큼 받길 바라지 않을까’ 혹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나’라고 생각하곤 한다.

▶ 기브 엔 테이크에서도 강조하는 대가 없는 베품인데, 여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유보를 한다면 베푼 만큼 바라는 마음도 쉽게 자리 잡기 어려울 것 같다. 척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완전히 몰입해서 돕고 나누고 베푼다는 기저에 어쩌면 그만큼 상대방에대한 기대도 깔려있을 수 있지 않은지 돌아보자. 그러니까 사람을 판단하려 하지 말자.

 

[까칠남의 인기 비결]

타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염려는 그대로인데, 가족 모두를 나의 범주로 묶어버리면 이웃의 평판이나 아는 사람의 감정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다. 이러면 결국 아이들에게 “남들이 뭐라고 하겠니?”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않고 남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이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이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자신보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지고,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중심에 두지 못한다.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지만 마음과 정신건강은 매우 불편한 상태가 반복되는 셈이다.

 

[내가 원하는 것 적어보기, 자향위오할]

남의 눈치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은 자신에 대해 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욕구와 행동이 서로 일치하는지 불일치하는지도 판단하지 못한다. 지금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적어보길 바란다. 그것이 타인에게 바라는 것일 수도 있고, 나에게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막상 쓰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욕구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세련된 의존을 하는 사람들]

이른바 세련되게 의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자존감이 강하다고 해서 모든 일을 자신이 처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한계를 인정하고, 대놓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 자립심이 강한 것이 곧 자존감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드러내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솔직, 솔선이야 말로 높은 자존감이다.

 

 

 

PART.4 자존감을 방해하는 감정들

 

[감정 폭박 후 우울해지는 이유]

부모가 아이에게 고함을 지른 후 나쁜 부모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배우자에게 폭언을 한 후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인간은 흥분기 뒤에는 우울기가 나타나도록 진화되었다. 감정이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안전장치인 셈이다. 흥분 뒤에 우울이 오는 건 위기를 제어하려는 본능으로 인간 생존에 필수적이다.

▶ 감정이라 착각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세 가지 부류]

감정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웬만해서는 화도 내지 않고, 미움도 없으며, 슬픔도 부정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것을 나약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거부하는 것이다. 엄마니까 힘들어도 참아야만 한다는 초보 엄마, 내가 선택한 길이니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신입사원, 시험에 합격하려면 공부에만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험생 들이 주로 이런 경우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에 죄책감을 갖는다. 감정을 안 느끼려는 행위는 ‘다이어트를 해야 하니 배고프지 말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본능이 있는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 힘들다. 어렵다. 잘 모르겠다라고 하는 것이 그 솔직함이 나약한 행동, 나약한 생각이라는 것에서 오는 거부감으로 역치가 높은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극도의 솔직함이라는 것이 요구되는 것일 수도 있겠고.

 

[감탄사로 끝나는 감정일기 쓰기, 자향위오할]

감정 일기를 쓸 때 중요한 것은 마무리다. 무조건 ‘나는 오늘 이러이러한 감정을 느꼈구나!’로 끝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왜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로 끝내면 다시 한 번 감정을 격화시켜 자기 비난이나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일부러라도 물음표를 지우고 무조건 감탄사로 끝내자. '왜이리 마음이 힘들까? X 오늘은 참 여러 가지로 억울한날이구나! O

▶ N성향이 있다. 파고드는 성격. 그리고 왜 그랬을지를 알아야 개선하고 반복하지 않는 다고 배운 내용들을 '모든 부면에 적용하려한다. 아니,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그러다보면 취지는 옳아도 스스로를 좋지 않았던 감정에 더 노출시킨다. 자연스레 삼천포도 빠지게 되고

 

[나의 핵심 감정 생각해보기, 자향위오할]

아, 오늘도 나의 핵심 감정인 ○○○이 터졌나 보네!’ 하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인식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왜 나는 이 모양이지?’라는 질문으로 자신을 비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 없다. 단지 ‘나의 핵심 감정이 오늘도 폭발하는구나!’ 하고 감탄하면 된다. ‘왜?’라는 질문은 상처를 주기 쉽지만 감탄은 자신의 감정을 짚고 넘어가게 만든다.

▶ '내가 오늘 힘들구나' '내가 오늘 기분이 좋구나' BM >> 목실감에 행복했던 일 말고도 내 감정을 인식하기 위한 적용점이 없을지 생각해 보자.

 

다시 말하지만 핵심 감정은 여러 개일 수도 있고 매일 변할 수도 있다. 심지어 핵심 감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릴 때의 꿈 혹은 장래희망처럼 보면 된다. 소방대원, 연예인, 경찰,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정했다고 해서, 또 커가면서 그 꿈이 변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꿈이 없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니 핵심 감정을 반드시 찾아내야겠다고 마음먹기보다는 편안하게 생각을 정리해보길 권한다. ‘나의 핵심 감정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조금 더 건강해진다.

▶ 정답 찾기 식은 여러모로 좋지 못하다.

 

 

 

PART.5 자존감 회복을 위해 버려야 할 마음 습관

 

[내 파국화의 끝 바라보기]

대부분의 좌절은 그렇게 온다. 지금 상황이 문제라기보다는 그 일이 진행되고 진행돼서 파국으로 이어질까 봐 미리 걱정하는 게 문제다. 막상 자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게 되면 문제는 대개 해결된다. 막연하고 모호한 불안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불안으로 변환하는 방법이다. 해결 가능한 불안이면 해결책을 세우면 되고, 불가능하다면 포기하면 된다.

▶ 걱정의 99%는 실제로 이어지지 않는다. 레알. 그 걱정을 구체화하는 것은 현실이 아닌 내 자신. 통제 할 수 있는 역역과 통제 불가능 영역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BM) 그럴 수도 있지

 

[무기력에 빠지기 쉬운 세 가지 상황] 소진흥후군

이 경우는 주로 체력 문제다. 정신적으로는 아무리 긍정적 보상물을 얻었다 해도, 아니 오히려 그 보상물에 의지해 무리해서 힘쓰다 보면 3년에서 7년 사이에 반드시 체력이 달린다. ‘당근’에 취해서 자신이 고갈되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이때는 잠시 쉬다 보면 대개 해결이 된다. 여유가 된다면 안식년을 갖는 것이 좋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휴가라도 내야 한다. 그마저도 힘들면 주말에라도 푹 쉬어야 한다. 몸에 필요하면 영양제라도 맞으면서 쉬고, 잘 자고 잘 먹는 것 위주로 생활을 조절해야 빠져나올 수 있다.

▶ ^>^ 수면과, 운동은 어떠한 일이있어도 놓지 않기, 투자 활동도 마찬가지.

 

[무기력을 강화하는 고정관념]

첫째, 의욕을 떨어뜨린 원인을 제거해야만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의욕 저하 또는 무기력은, 굴러가던 축구공이 담벼락에 부딪혀 멈춘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담벼락이 막아서 공이 멈춘 건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담벼락을 치운다고 해서 공이 꼭 다시 굴러가는 건 아니다.

둘째, 재미를 느껴야만 의욕이 생긴다는 생각이다. 재미는 주로 어떤 일을 배우거나 처음 할 때 느낀다. 그 일에 능숙해지려면 반복해야 하는데, 그러면 재미가 사라진다. 그런데 수년 동안 같은 작업을 한결같이 의욕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재미로 일하는 게 아니다. 원치 않는 일이라도 의욕적으로 할 수 있고 반복하다 보니 잘하게 됐고, 숙련에서 오는 편안함이 의욕을 부르기도 한다.

세 번째는 의욕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의욕이 있건 없건 움직이고 실행할 수 있다. 의욕은 행동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또 움직이다 보면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자동차에 시동이 잘 안 걸릴 때 일단 밀어서 굴리다 보면 걸리듯이 말이다.

행동하는 데 반드시 의욕이 선행될 필요는 없다.

▶ JUST DO IT, 제발 그냥 좀 하자. 움직이고 행동하면 따라온다. 명분과 해결책이 있어야만 행동한다는 생각으로는 오히려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 일상에서는 생각하고 행동하되,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행동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일단 무작정 움직일 것]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려면 일단 움직여야 한다. 원치 않아도, 재미없어도, 의미 없어도 된다. 밖에 나가 조금이라도 걸어야 하고, 그것도 안 되면 몸부림이라도 쳐야 한다.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이라면 연애부터 해봐야 하고 연애가 망설여진다면 소개팅부터 해봐야 한다. 그것도 꺼려진다면 친구와 영화라도 봐야 한다. 마라톤을 시작할까 말까 망설여진다면 동네 한 바퀴부터 돌아봐야 한다.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기 전에 비슷한 행동부터 해야 한다. 의욕을 얻고 싶다면, 생각하는 걸 멈추라. 물론 처음엔 잘 안 될 것이다. 그럴 땐 무작정 몸을 움직이라.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움직여보라. 손도 한번 털어보라. 의욕이 어디선가 갑자기 솟아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 할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일단 하자. 고개를 털어 잡념의 환기라도 시켜보자. Don Think Too Much

 

[성공한 사람들의 열등감]

열등감을 연료 삼아 목표를 이룬 경우에도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한다. 이들은 현재 시점에서는 문제되지 않는 사소한 것 즉, 집안 배경이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경험에 집착한다. 이들에게 열등감은 삶의 원동력이자 채찍이었다.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했거나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이제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여유를 가져도 되건만 열등감이라는 친구를 버리지 못한다. 자신을 낮은 위치에 놓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정신으로, 자향위오할]

숨을 내쉴 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말도 함께 내뱉도록 한다. 세상에 냉소를 뱉는 순간 열등감을 식힐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잘난 것도 없고 모자란 것도 없다. 그저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깨닫게 된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시니컬해지자.

▶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예외가 아닌기본. 지나고 보면 인생에서 점도 아닌 것이고, 그럴 수도 있지~~

 

[시작은 연결 짓는 습관]

자존감 강한 사람들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인생에서 발생한 나쁜 사건이 자존감까지 약해지도록 하지 않는다. 힘든 일이 생긴 건 안타깝지만, 그걸로 삶이 휘어지진 않는단 얘기다. 말하자면 나쁜 일과 자신 사이에 단단한 벽이 있어서, 바이러스를 항체가 방어하듯 자신과 연결 짓지 않는다. 문제의 시작은 연결에서 온다. 자책은 타인의 문제를 나에게서 원인을 찾을 때 생긴다. 나의 문제를 남에게 연결할 때 분노가 된다. 자기 문제로 지나치게 연결하는 습관은 예민함의 씨앗이 되며 자존감에도 치명적이다.

 

[관계 사고에서 피해 사고까지]

관계 사고에 빠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당당하게 보일까’ 하고 자주 생각한다. 그만큼 당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모임에서 남들 사이에 오가는 한마디 한마디에서도 은근히 자신에 대한 언급이나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운다. 남의 말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억력이 좋아 보이기도 한다. 남들은 다 웃고 넘어가는 일을 혼자 곱씹고 되새기기 때문이다.

 

[남의 감정은 남에게 맡기자]

예민함을 떨치려면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타인의 범위는 무척 넓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은 모두 타인이다. 가족도 남이고, 친구도, 회사 동료도 당연히 남이다.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의 일을 남의 일로 남겨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남이 한 얘기나 행동을 곱씹고, 내가 피해봤다고 생각하면서 행복하기란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남의 감정은 그 사람에게 맡겨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마다 자기만의 웃음 코드가 있고 감정의 급소가 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웃는 부분과 우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각자 느끼는 감정은 자기만의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따라서 “당신 그런 일로 기분 나빠하면 어떡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남들의 감정은 그들 고유의 것이며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 감정이 내 잘못으로 생긴 것도 아니며 내 책임도 아니다.

 

[예민함을 없애는 주문 외우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좀 어떤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거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를 뒤흔들게 할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인간관계에 예민해질 때면 “그 사람하고 사이가 좀 나빠지면 어때?” 하고 내뱉어보자. 건강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하다면 “좀 아프면 어때? 누구나 지병 하나씩은 갖고 살아가잖아”라고 해보자. 그 말만으로도 예민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판단을 잘못해서 금전적인 손해를 본 경우, 잃은 돈의 액수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집착이다. 손해를 봤다는 생각에 몰두해서 며칠이고 시간을 낭비하거나 인간관계에 금이 가기까지 한다. 이럴 땐 “그깟 돈 몇 푼 잃은 게 뭐라고” 하고 중얼거리자. 주문 : 그럼 좀 어때!, 그게 뭐라고!, 좀 잘못되면 어때!

▶ 타자분리, 단순히 덮어둘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분을 내 책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 행동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정중히 사과하고 반복하지 않고 개선하면 되는 것이다. 지레짐작하여 예의의 범위를 넘어서 혹시나 기분 상하게 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발전되면 보여지기 위한 노력, 행동으로 이어질 수 박에 없다. 운조띠, 미미선배 땡큐🧡

 

 

PART.6 자존감 회복을 위해 극복할 것들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믿어라]

우리는 모두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원하고 자존감의 회복을 바란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이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복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밀어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점을 믿어야 한다. 나에게 만족하는 내가 되면 행복해진다고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자존감이 높아지고 행복해지면 잃는 것들도 있다. 불행했을 때, 자존감이 낮았을 때 가끔 받았던 동정심이나 배려, 양보 같은 것들과 헤어져야 한다. 또한 부러움을 받는 한편으로 시기나 질투도 받을 수 있다.

▶ 미움받을 용기가 자존 향상과 회복에 필연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수 있다.

 

[악순환 극복하기]

버릴것 1 근본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

버릴것 2 남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

버릴것 3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

▶ 와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강조받고 성장해왔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 나의 잘못된 복기로 복기를 하느니 못 하게 될 수도 있겠다

 

[당장 해결 할 수 있는 것부터]

꼭 나쁜 점을 다 없애야만 자존감을 회복하는 건 아니다. ‘나에겐 이런 점들이 있구나’ 정도로 인정하고 꾸준히 극복 시도를 해보면 된다. 낮은 자존감은 말하자면 몸에 붙은 군살과 같다. 쓸모없는 지방층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 근육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자신에게 붙은 나쁜 점들을 봤다면, 이제는 새로이 좋은 면을 북돋울 차례다. 긍정적인 면 말이다.

▶ #개선 #성장 이라는 키워드에 노출된 시간을 보내면서 장점이나 스스로가 좋아하는 부분에 대해 알려는 노력을 등한시 해왓다. 내 영혼 부합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것. 나를 알아가는 것에서 부터 자존 회복의 출발도 가능해진다.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장점은 무엇인지 스스로가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PART.7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다섯 가지 실천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성형외과 광고판에서는 성형수술 ‘전’과 ‘후’ 사진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광고들을 보면서, 전에 이러했던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많은 광고들이 그런 식이다. 과거는 어땠고 미래는 어떨지 보여준다. 이처럼 과거–현재–미래에서 현재는 빠져 있기 일쑤다.

변화를 원하는 건 현재가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는 현재를 건너뛴다. 과거와 미래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현재 없이 미래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성형수술은 피가 튀고 엄청나게 아픈 과정이다. 그게 현실이다. 마음의 변화를 겪고 싶다면 자기 마음을 수술해야 한다. 여기에도 약간의 고통과 인내가 따른다. 그런데 그것조차 감수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늘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면서 현재를 외면한다.

▶ 어제와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자. 찰나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매일 반복되도 새롭게 여기는 개처럼

 

[패배주의를 뚫고 전진하기]

자존감 약한 사람들이 우유부단하고, 결정을 못 내려 갈팡질팡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선입견이다. 이들은 확고하다. 본인이 잘 안 될 거라는 믿음만큼은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그들이 부정적인 사료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약점, 상처, 결여, 잘 안 된 경력만 상기한다. 부정적 근거를 바탕으로 부정적 결론을 강화시킨다.

 

[당신은 밀림의 왕이다]

동물의 왕이라고 여겼던 사자가 뱀에 물려 죽기도 하고 코끼리에게 밟힐까 봐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치기도 했다. 고단한 사자를 보는데 눈물이 찔끔했다. 내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사자였는데, 사자처럼 되고 싶었는데, 정작 사자는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었다.어쩌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슬픈 사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중심에 서 있고 싶고, 가족은 나만 믿고 있는데 알고 보니 세상엔 우리를 위협하는 것 투성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지금은 잠시 고된 육아와 생활 전선에서 지쳐가지만, 우리는 모두 사자보다 멋지고 뛰어난 왕이다. 가족에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딸이자 부모, 배우자이고, 많은 위기를 견뎌낸 전사이자 꿋꿋하게 삶을 지켜낸 영웅이다. 가끔은 예기치 못한 공격에 중심을 잃기도 하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울부짖기도 하겠지만 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불 꺼진 방안에서 숨죽여 울어도 괜찮다. 약해서가 아니다. 인간이라 그렇다. 어떤 순간에도 잊지 말자. 당신은 밀림의 왕이다. 세상의 중심이다. 당신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다.

▶ 어릴적 반복되는 일상 속 평범한 하루, 평범한 시기라 생각했던 부모님에 대한 내 기억, 인식들 이면에 하루하루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며 버텨오셨을 부모님의 치열함과 포기하지 않은 버팀이 있었을 것이라는 마스터 멘토님의 이야기에 부모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사고 환기가 되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럴 필요가 충분히 있다. 충분히. 비록 부모님에 비할 수 없지만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직 멀었다며 밀어내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 사실이니까. 충분히 의미부여해주어도 된다.




댓글


후바이님에게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