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딸아이의 졸업식에 다녀왔습니다.
사진도 찍어주고, 점심도 함께 먹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괜히 마음이 뭉클했었어요.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자산을 키우기 위해서.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의 진짜 대답은 따로 있습니다.
"시간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아빠, 학교 발표회 있는데 올 수 있어?"
저는 한참을 폰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날 오전에 이미 미팅이 두 개였고, 오후엔 보고서가 쌓여 있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안해. 오늘은 좀 힘들 것 같아."
딸은 "아 알겠어"라고 답했습니다.
네 글자. 단 네 글자였습니다.
그 네 글자가 지금도 가끔 떠오릅니다.
체육대회 날. 참관수업 날. 처음으로 상장을 받던 날.
"바빠서", "일이 있어서"라는 말을 반복하는 동안,
아이의 시간은 그냥 흘러갔습니다.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회사의 시간표대로.
상사의 일정대로.
거래처의 요구대로.
내 하루의 주도권이 나에게 없었습니다.
단번에 바뀌지 않습니다.
1년, 2년, 조금씩 자산이 쌓이면서 선택지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오늘 반차 내도 되겠다."
"이 미팅, 다음 주로 미뤄도 되겠다."
"아이 행사, 이번엔 꼭 가야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돈이 주는 가장 큰 자유라는 걸, 저는 뒤늦게 알았습니다.
졸업식이 끝난 후, 나란히 걸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저는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4년 전 네 글자의 답장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수익률 때문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자산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난 겨울 같은 날, 아이 옆에 앉아 있을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직 시작을 망설이고 있다면, 딱 한 가지만 물어보세요.
"지금의 나는, 내 하루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가?"
그 답이 "아니오"라면, 지금이 시작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