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후 집 앞에 있는 빵집에서 누군가 인사를 해 주셨어.
작년에 코칭을 통해 만났던 수강생분이었어.
옆에는 그때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수강생분의 남편분과 아빠의 손가락을 꽉 붙들고 있는 아이가 있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 주셨던 그 분의 이야기를 대신 들려줄께.
혹시 신분증 뒤를 뒤집어본 적 있어?
거기에 스티커가 몇 장이나 겹쳐 붙어 있는지, 한번 세어본 적 있어?
나는 있어.
한 장, 두 장, 세 장.
주소가 바뀔 때마다 주민센터 직원이 무심하게 덧붙여주던 그 하얀 스티커.
누군가에겐 그냥 행정 절차겠지만, 무주택자에게 그건 이사의 역사야.
쫓기듯 떠나온 동네들의 기록이고, 2년마다 다시 시작해야 했던 불안의 지층이야.
전세 살던 시절의 나도 그랬어.
만기가 다가오면 집주인 전화가 제일 무서웠어.
"실거주하려고요" 이 한마디면 우리 가족의 2년이 통째로 흔들렸으니까.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어디서 그 돈을 구하지, 밤에 누워 천장만 봤어.
이사 견적 알아보고, 아이 어린이집은 어떻게 하지 계산하고, 박스에 짐을 싸면서 '이 짐을 몇 번이나 더 싸야 하나' 생각했어.
그때 나는 동네에 정을 주지 않았어.
단골 가게도 안 만들었어. 이웃하고 인사도 잘 안 했어.
어차피 2년 뒤면 떠날 동네니까.
정 붙였다가 미련 남기는 게 싫어서, 스스로 방어막을 친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제일 서글픈 부분이었어.
집이 없다는 건 돈의 문제만이 아니었어.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소속감의 문제였어.
그러다 처음으로 내 집 잔금을 치르고,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하러 간 날.
직원분이 신분증 뒤에 새 스티커 한 장을 붙여줬어.
그 낡은 주소들 위로 하얀 여백이 덮이는 순간.
이상하게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더라.
수억의 대출을 새로 짊어진 날인데, 마음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어.
왜였을까.
이자 때문에 더 무거워야 정상 아니야?
아니야.
그날 내가 산 건 시멘트 공간이 아니라 통제권이었거든.
더 이상 남의 결정에 내 삶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2년이라는 숫자에 쫓겨 다음 정거장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대출 이자보다 훨씬 무거웠던 '주거 불안'이라는 돌덩이를 내려놓게 해줬어.
그날 이후 동네가 달라 보였어.
아니, 동네는 그대로였는데 내 눈이 달라진 거지.
세탁소 사장님한테 먼저 인사하게 되고, 마트 야채 코너에서 단골처럼 굴게 되고, 길가의 가로수 한 그루도 '앞으로 같이 나이 들어갈 사이'처럼 보이더라.
아이 손을 잡고 동네를 걸으면서 생각했어.
이 골목이 이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정거장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뿌리내릴 땅이구나.
집을 산다는 건 소속감을 사는 일이었어.
여기까지 수강생분께서 해준 이야기를 대신 담아봤어.
그래서 지금 전월세를 살면서 이 글을 읽는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지금 네가 느끼는 그 불안, 만기 앞에서 잠 못 드는 그 밤, 신분증 뒤에 또 한 장 덧붙는 스티커.
그건 네가 못나서가 아니야.
나도 똑같이 지나온 길이야.
그리고 그 감정은 없애야 할 게 아니라 연료로 써야 하는 거야.
내가 했던 건 세 가지야.
하나. 불안해하는 시간에 종잣돈을 모았어.
금액이 작아도 상관없어. 방향이 맞으면 속도는 붙어.
둘. 이사 다니는 시간을 공부로 바꿨어.
어차피 2년마다 동네를 옮겨야 한다면, 그 동네의 시세와 입지를 내 눈으로 익히는 거야.
무주택 시절은 사실 최고의 임장 기간이야.
셋. 시장이 급할수록 내 기준은 천천히 움직였어.
남들이 서두른다고 같이 서두르면 불안이 결정을 대신하게 돼.
불안으로 산 집은 또 다른 불안이 될 뿐이야.
언젠가 너도 주민센터 창구 앞에 서는 날이 올 거야.
직원이 무심하게 붙여주는 스티커 한 장에 지난 유랑의 기록이 전부 덮이는 날.
그날의 너는 알게 될 거야.
그 작은 스티커가 세상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네 가족만의 닻이라는 걸.
그날까지, 조급해하지 말고 네 속도로 한 걸음씩 가.
나는 그 길 끝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게.
할 수 있어. 진짜야.

댓글
종잣돈을 모으고, 공부을 하고, 시장이 급해도 나는 기준대로 움직인다. 저도 제가 서울에 내집을 살수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었고 정말 하다보니 할수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대출규제거 되어도 토허제로 지정이 되어도 가격이 날뛰고 매물이 사라져도 기준을 지켜 샀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것같습니다. 최근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냥 막연하게 서울은 비싸잖아요 평생 못살것같은데요. 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과거의 제 모습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슬픈말인것같아요. 도전해보기도 전에,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그 미래를 꺾는 다는 게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충분히 할수있는데, 나도 했는데.. 이 세상에 아직 하고자하면 할수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내집마련하고자 하면 할수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제대로 알려줄수있을지 매일 채워나가는 투자자가 되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월세입자입니다. 하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습니다. 월부를 통해 공부하고, 2년뒤면 입주할 내집이 있습니다^^ 요즘같은 전월세난에 내집이 주는 안정감! 정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