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버는 독서모임] 독서후기
✅ 도서 제목
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
✅ 가장 인상깊은 구절 1가지는 무엇인가요?
포용적 질서가 무너졌다고 느낄 때 자산가들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
✅ 책을 읽고 알게 된 점 또는 느낀 점
학생일 때는 민망하지만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었다. 조선왕조 왕 이름이 어쩌구,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등등 국사에 세계사까지 시작했을 때는 어차피 책에 나오는 스토리를 왜 외워야 하는지 정말 화가 날 정도로 싫었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다행히. 역사는 정말 다른 일들이 벌어진 것 같지만 결국은 비슷비슷한 일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일어났고, 그 패턴만 알게 되면 어느정도 미래를 대응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부동산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나 항상 진실은 달랐다. 아니, 월부에서 배운 다주택 방식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인해 꽤 오랫동안 이 방법으로 노후 준비하고 조금이라도 더 자산을 모아보겠다고 나는 나름 꽤 열심히 했더랬다. 근데 당분간 똘1 체제인 시대를 맞이하며, 그 어느때보다 오래 하는 것이 유리하다를 넘어 시간을 슬기롭게 보내야한다는 내마실 유디튜터님 강의를 들으며,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기는 하겠지만 꽤 짧지 않은 시대는 똘1을 요구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암튼 영원한 건 없다는 것을 시대의 힘으로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는 와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이후 드는 생각은 이 놈의 대한민국 부동산 역사는 똑같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오래된 시간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서울 부동산 불패의 신화이다. 비록 지금은 핵심지가 강남으로 바뀐 차이가 있다면 있겠지만, 서울 부동산은 태어날 때부터 서울 부동산인 셈이었다.
10년 뒤 2026년을 떠올리면 나는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그때도 분명 26년이 정말 쌌지라고 할까?
여튼 저자는 정말 많은 참고문헌을 통해 대한민국 부동산의 근대사를 정리했고, 결국 저자의 삶이 대부분이었던 최근 약 10년의 부동산 역사를 직접 참여하면서, 21년에 팔고 23년에 매수하는 정말 신의 한수를 2번 연속해서 시연하는 역사도 적어주시면서, 마치 월부에서 누구한테 배울 때는 그 누구가 실력이 있는냐가 중요하다라는 논리에도 부합한다느 것을 증명하는 듯한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여튼, 앞서 적은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더더욱 느낀 것은, 다주택 포지션만이 답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되며, 앞으로 시장은 계속 변할 것이고 과거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지만 워낙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힌트만 얻을 뿐 솔루션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마도 너나위님이 2~3천만원으로 수도권 집을 대량으로 매수 할 수 있었던 시기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인플레라는 이유도 한몫 하겠지만, 그 만큼 사람들이 똑똑해지고 정보가 오픈되면서 같은 수법이 통하는 시대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약간 씁쓸한 느낌도 들었다. 조금 오바하면, 앞으로 2억으로 4급지 전세 레버리지 투자할 수 있는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마치 그 시절의 추억들도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아 겁나는 것 처럼 말이다.
✅ 나에게 적용할 점
나의 부동산의 역사는, 얼마나 복기해 봤을까? 물론 복기를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 수록 내 실력은 더 올라가는데 과연 같은 생각을 할까? 우리 부보님의 부동산 역사는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저자는 그 시대의 김부장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했을 법하고 어떻게 했으면 더 유리했을 것이라고 어느정도 시대적인 복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기대를 하고 봤는데 약간은 논문을 쓰신 듯한 팩트체크가 더 많아 조금 아쉽긴 했다.
그래도 대한민국 부동산에 대해 이렇게 데테일하게 적은 책도 없기 때문에 부동산을 하겠다는 사람은 한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조선 후기, 경제와 사회 전반에 대단히 큰 변화가 출현했다. 모내기가 시작되면서 토지 생산성이 향상된 데다, 정부가 개간과 개척을 장려하는 과정에서 토지 소유권이 상당 부분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 17세기 말부터 조선 사회는 강력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소빙하기 충격이 마무리된 후 인구가 늘어나고, 상품 시장이 성장하며, 화폐 경제가 활성화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 덕분에 한양의 집값은 18세기 내내 상승했지만, 토지 가격은 18세기부터 개항기까지 지속적인 하락을 경험했다.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서울'을 선호하는 현상은 매우 오랜 기원을 두고 있는 셈이다 🔗 5% (12p) | 2026.07.08 07:27
특히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른바 겸화사족(兼華士族), 즉 한양에 사는 세도 가문들이 벼슬을 독점하며 정보와 연줄의 중요성이 커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소유권이란 하나의 토지에 주인이 한 명뿐이고, 이 토지를 마음대로 사용하며, 남에게 팔거나 빌려주는 것은 물론,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권리라 볼 수 있다.2 🔗 6% (13p) | 2026.07.07 14:05
전통 촌락이 만들어진 시기를 조사한 결과, 평지 마을의 건립 시기는 15세기가 다수를 차지한 반면, 계곡에 들어선 마을은 17세기 이후에 집중된 것을 발견했다.10 계곡에 저수지와 보를 만들어 경제력을 쌓은 지방 양반들은 주자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주민 자치와 상호 부조의 규약 및 벌칙을 규정한 향약(鄕約)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 7% (15p) | 2026.07.07 14:16
한양과 지방의 토지 가격 양극화 현상도 정치적 불안정을 부추겼다. 〈그림 1-1〉 은 1700년부터 1900년까지 실질 토지 가격의 흐름을 보여 주는데, 20세기 초반까지 실질 토지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세였음을 알 수 있다.17 반면 같은 기간 수도 한양의 주택 가격은 급등세가 이어졌다 🔗 7% (15p) | 2026.07.07 19:55
지방의 토지 가격이 하락하는 데 한양의 집값만 오른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인구 집중 때문이었다. 공식적인 한양 인구는 1669년에 22만 명에서, 1770년대에 30만 명, 1820년대에 35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는 상품 경제의 발달에 따른 도시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조선 왕조가 한양 성곽 주변에 새로운 주택 지구 건설을 엄격하게 금지한 것도 주택 가격의 상승을 부추겼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 당국의 개발 억제 정책이 수포로 돌아가며, 약 8만 호의 가옥이 주변에 건설되기에 이른다.21 그럼에도 한양의 집값 상승을 막을 수 없었으니, 그 주된 원인은 19세기 초를 고비로 시작된 강력한 인플레이션이었다. 🔗 7% (17p) | 2026.07.08 07:21
특히 한국 평균으로 측정한 실질 논 가격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는데, 전란으로 경제가 마비되고 생계 위기가 발생하며 논농사를 지음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한양의 집값은 19세기 내내 상승해, 이때부터 "집은 한양에 사 두어야 한다."라는 인식을 심었다. 이 인식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욱더 확고해져, 역대 정권이 서울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출발점이 되었다. 🔗 9% (20p) | 2026.07.08 07:26
식민지 시대 우리 경제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일제와 일본인에 의한 경제 침탈과 지주 계층의 소득이 쌀 수출 덕분에 크게 증가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해진 것이다. 특히 농업 생산성의 향상으로 토지에 기반을 둔 부자들이 형성되고, 이들은 서울의 부동산 매수에 열을 올렸다. 물론 서울 주택의 상당 부분을 일본인이 소유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부유층의 요구에 맞춘 문화주택 등이 공급되면서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집값은 폭등했고, 일제는 행정 구역 확대와 신규 택지 개발에 나섬으로써 서울을 둘러싼 "끝없는 신도시 개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 9% (21p) | 2026.07.09 06:44
일제가 토지 조사 사업을 추진한 가장 큰 이유는 조선 후기 이래 지주 소작 제도를 발전해 온 부유한 조선인들을 식민지 통치의 동맹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 84% (186p) | 2026.07.16 06:53
19세기 위기가 절정에 도달할 무렵, 흥선대원군이 등장했다. 그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서원 철폐 등 다양한 개혁 정책을 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큰 문제를 만들었다. 1866년 10월, 우의정 김병학(金炳學)이 경복궁 재건 🔗 9% (21p) | 2026.07.08 07:27
영등포와 대방을 제외한 8개 지구는 모두 강북에 있었다. 5개(돈암, 신당, 용두, 청량리, 사근)는 도심 동북쪽, 2개(대현, 공덕)는 도심 서남쪽, 1개(한남) 🔗 13% (30p) | 2026.07.09 06:41
미군정이 농지 개혁에 앞장선 이유는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가 소련에서 동유럽 그리고 중국으로 빠르게 확산된 원인이 토지 불평등에 있음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미군정의 농업 정책 담당자였던 울프 라데진스키(Wolf Ladejinsky)는 농지 개혁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핵심 수단이라고 수뇌부를 설득했다.5"나는 1912년 초 러시아를 떠나기 전에 혁명을 통해 얻은 고통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바로 농민들에게 토지를 돌려줌으로써 단호하게 토지 문제를 해결했다면,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권력을 잡지 못했을 것이라는 교훈 말입니다." 🔗 14% (32p) | 2026.07.08 20:58
집단 농장의 해체가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 이유는 '동기 유발'에서 찾을 수 있다. 아무리 농사를 지어 봐야 대부분의 수확물을 지주(와 정부)에 빼앗기는데 수확량을 늘리려는 동기가 생기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 땅이 생김에 따라, 가족 구성원을 총동원해 생산량을 늘릴 가능성이 열렸다. 집단 농장에서 일하는 것은 조별 과제가 매번 벌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무임승차'를 누리려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결국 '다 같이 망하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던가. 그래서 필자는 대학교나 대학원 강의에서 절대 조별 과제를 주지 않는다.특히 해방 이후 한반도 남부 지역은 개별 경작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일본과 만주에서 돌아온 실업자가 넘쳐흐르고 있었기에, 노동력을 활용해 최대한 생산을 짜내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한국 사회가 전후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때 필요한 재원 대부분을 조달할 수 있었다.15 심각한 인플레를 이유로 이승만 정부는 토지세를 현물로 거두는 '임시토지수득세'를 도입했는데, 세율은 최고 28%에서 최저 15%에 이르렀다.16 1955년 기준으로 식량 생산량의 약 26.7%를 정부가 현물로 가져갔는데, 이 조치가 없었다면 70만 명으로 부풀어 오른 한국군의 먹거리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17농지 개혁이 가져온 긍정적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유례를 찾기 힘든 교육 붐이 발생했던 것이다. 특히 교육은 재산권의 강화를 유발해 포용적 사회(inclusive society)를 만든다는 점에서 경제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18 〈그림 3-2〉는 성인 인구 중에 문자 해독 능력을 가진 사람과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의 비율을 보여 주는데, 해방 이후 강력한 상승세가 나타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9 🔗 16% (36p) | 2026.07.09 06:47
그러나 이승만 정부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3~1960년 정부 총수입의 72.5%를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고, 원조는 UN군과 관련된 외환 수입과 미국 원조로 제공되는 재화를 판매하여 얻는 수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16 특히 후자를 대충자금(對充資金)이라고 불렀는데, 전체의 약 70%에 육박할 정도로 큰 비율을 차지했다 🔗 19% (44p) | 2026.07.09 07:07
한남대교 남단에 있는 신사동 일대의 땅값은 평당 200원 정도였는데, 1년 뒤에 3,000원으로 무려 열다섯 배 상승했을 정도였다.4 🔗 21% (49p) | 2026.07.10 10:17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해 1979년에 끝난 두 번째 주택 사이클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사이클을 결정하는 것이 수출 경기라는 점이다. 정부가 아무리 다양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글로벌 경기 여건이 좋고 국민 소득이 늘어날 때는 주택 가격을 잡을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중요한 포인트는 '부동산 불패 신화'의 형성이다. 1972년 '8.3 조치'를 계기로 정부의 사유 재산 보호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인식한 재력가들은 틈이 날 때마다 부동산을 매수했다. 정부가 경제 성장을 명분으로 사채를 동결하는 마당에 부동산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인식은 1989년 말 세 번째 주택 시장 정점까지도 부동산 시장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 23% (52p) | 2026.07.13 07:14
포용적 질서가 무너졌다고 느낄 때 자산가들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 〈그림 5-5〉는 1965년 이후 한국 실질 토지 가격을 보여 주는데, 1970년대 초반부터 다시 상승세가 재개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그림 5-5 전국 실질 토지 가격 변화, 1965~1980년출처: 한국은행, 국토교통부, 프리즘 투자자문 작성.금융 억압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배율(price to income ratio(이하 'PIR')이라는 지표를 활용해 보자. 1972년에 연 소득이 100만 원에 달하는 고소득 직장인 C 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로 전환되자 서울의 주택을 구입하려 노력 중이다. 왜냐하면 경제 성장률은 연 30%에 이르는데, 인구가 집중되는 서울의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시세 2,000만 원에 이르는 서울의 집을 매입하려면, 20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야만 한다. 이때 PIR은 20배이다. 2025년 기준으로 바이든의 PIR이 47배, 서울이 27배이니 무리한 가정은 아닐 것이다.15 다시 1972년으로 돌아가, C 씨의 연 소득이 30%씩 꾸준히 늘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1980년에 C 씨의 소득은 연간 약 815만 원이 된다. 만일 주택 가격이 2,000만 원에서 오르지 않았다면, PIR은 2.4배가 된다. 이 정도라면 주변에 사채를 빌리는 한이 있더라도 주택을 구입하는 게 이득이다. 더 나아가 전세를 끼고 사는, 이른바 '갭 투자'라는 선택지가 있으니, 집을 사려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들보다 한발 먼저 주택을 사려는 사람이 몰려들어, 서울의 집값은 PIR 20배 혹은 그 이상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다.* 🔗 27% (61p) | 2026.07.13 07:10 (※ 별표 * 기호 포함)
'8.3 조치'의 영향으로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근로자의 임금이 가파르게 인상되는 가운데 실질 금리마저 마이너스를 기록하니, 주택 시장으로 유입되는 돈을 막을 수 없었다 🔗 27% (61p) | 2026.07.13 07:10
한국 부동산이 외환 위기 이후 회복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은 주택 담보 대출이 미미한 데 있다. 박정희 시대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다루면서 사채 동결 조치를 유독 강조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들에 대출해 줄 돈도 없는데,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이 존재하기란 힘들었다.12 주택은행이 주택 구입 자금을 일부 공급했지만, 1996년 총대출금은 단 1.9조 원에 불과할 정도였다.1 🔗 35% (81p) | 2026.07.13 07:35
1970년 서울시가 분양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분양 개시 2개월도 안 되어 1,584가구가 모두 완판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중앙난방은 물론, 엘리베이터를 설치함으로써 생활 편의성을 극적으로 높여 아파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꿔놓았다.7 필자는 2000년대 중반에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거주했는데, 생각보다 편의성이 높은 것에 놀랐다. 특히 1971년에 지어졌음에도 온수가 나오는 목욕탕이 완비되어 있었는데, 1980년 전체 가구의 단 10%만이 누리던 호사였다고 한다.8여기에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며 지어진 아시아선수촌 아파트가 주거 혁명을 가져왔다. 아직 자동차 보급이 전면적으로 이뤄지기 전이었음에도 지하 주차장을 건설한 것이다. 이때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어진 아파트를 흔히 '2세대'로 지칭하는데, 시범아파트 때 도입된 중앙난방과 엘리베이터는 물론,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고 지하 주차장을 대규모로 건설한 것이 특징이다.특히 1990년대 초반에 지어진 '1기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2세대 아파트의 특성이 대거 채택됨으로써, 아파트는 고급 주택이라는 인식이 정착되었다.9 1975년 전체 670만 가구 중에서 아파트 비율은 단 1.4%(9.6만 가구)에 불과했지만, 1990년에는 전체의 14.8%가 되고, 2000년에는 36.8%까지 상승했다 🔗 55% (122p) | 2026.07.14 06:45
따라서 단독 주택을 살 때에는 "토지 가격이나 받고 팔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 54% (120p) | 2026.07.14 06:41
1999년부터 시작된 강력한 호황이 2008년에 마무리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촉발되면서 수출 전망이 어두워진 것, 그리고 중국의 원자재 수요로 촉발된 인플레에 대응해 한국은행이 정책 금리를 인상한 것이 주택 시장에 강력한 충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 37% (84p) | 2026.07.13 07:36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이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도권 주택 가격 안정이라는 목적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7 혁신 도시와 세종시로의 이전이 시작되며 수도권 인구 비중이 2012년 49.6%를 정점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지방 광역시 주택 가격은 꾸준한 상승세를 지속했기 때문이다.8 특히 KB부동산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하락하는, 이른바 '하우스 푸어'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 38% (87p) | 2026.07.13 07:45
그러나 2010년대 중반에 양극화 흐름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의 징후는 정부 정책 흐름이 달라진 것이었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추진한 보금자리 주택 공급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11 급격한 정책 전환이 시작된 이유는 수도권의 주택 경기 침체가 점점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 말부터 시작된 저축 은행 사태로 가계 부채 위기가 터질 것이라는 공포가 높아졌다.12 결국 2014년 9월 1일에 발표한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재건축 규제를 상당 부분 폐지하고, LTV를 낮추기까지 이르렀다.13 특히 공공 부문 택지 개발을 전면 중단한 것이 이후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강력한 상승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14 앞으로 수도권에 추가적인 신도시를 건설하지 않겠다는 뜻이니, 미래에 주택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신호를 준 셈이었다. 🔗 39% (89p) | 2026.07.13 07:52
왜냐하면 시진핑 정부가 중국 금융권에 만연한 부실을 청산하겠다며, 이른바 '그림자 금융' 규제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2013년 중국의 수입 증가율이 7.0%로 떨어진 데 이어, 2015년 -14.4%를 기록하자, 국제 상품 가격도 폭락했다. 2013년 말 1배럴에 98달러에 거래되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2014년 말 53달러로 추락하고, 2015년에는 37달러까지 떨어졌다. 중국 수요가 끝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생산 능력을 늘린 조선, 해운, 철강 산업의 전반적인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다.15* 🔗 39% (89p) | 2026.07.13 07:51 (※ 별표 * 기호 포함)
반면 2016년에 시작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구원했다 🔗 39% (90p) | 2026.07.13 07:51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주택 가격이 사용 가치와 콜 옵션*의 성격을 모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전세가 주택의 사용 가치를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콜 옵션은 그 주택의 미래 가격 상승 잠재력에 대한 시장 참가자들의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 42% (93p) | 2026.07.13 12:42 (※ '콜 옵션' 문구 뒤 별표 포함)*
한국개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 상승할 때, 수입품 물가가 1.07%p 인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한다.7 🔗 47% (104p) | 2026.07.13 12:57
일단 환율이 상승하면 부동산 시장은 두 가지 충격을 받는다. 무엇보다 환율이 급등할 때,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다. 1997년 외환 위기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환율이 급등하면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닌가?" 🔗 47% (104p) | 2026.07.13 12:57
11.10 대책의 두 번째 핵심 사항은 금융 규제 완화다. 우선 규제 지역 내 무주택자에 대한 LTV를 50%까지 허용하는 한편, 15억 원을 초과하는 가격의 주택에 2019년부터 적용되던 주택 담보 대출 제한이 해제된 것이다. 여기에 2022년 5월부터 시작된 규제 지역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유예도 큰 영향을 미쳤다.8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문재인 정부 때 시작됐다. 투기 과열 지역 주택을 매도하는 2주택자는 양도세율을 기본 세율에 20%p, 3주택자는 30%p 더 내야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징벌적 과세'라고 판단해, 2022년 5월부터 해당 조치를 매년 유예했다. 🔗 51% (114p) | 2026.07.14 06:34
그럼에도 주식 대신 주택을 매수한 이유는 한국 부동산이 지닌 한 가지 장점 때문이다. 바로 부동산 시장이 붕괴될 위험에 처할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이다 🔗 52% (115p) | 2026.07.14 06:36
, 혁신 도시 개발로 택지 공급량이 너무 많이 늘어났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14 2004년에 공급된 택지는 수원 광교, 남양주 별내, 고양 삼송 등이었고, 2006년에는 평택이 신규 택지로 공급되었다. 2007년에는 파주 운정, 인천 검단, 화성 동탄이, 2009년에는 하남 미사, 서울 서초 등이 공급되었다 🔗 52% (115p) | 2026.07.14 06:38 (※ 첫 문장의 쉼표 , 기호 포함)
즉, 정책 변화를 '저점'을 확인하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양가 상한제 완화, 양도세 중과 해제, 그리고 투기 과열 지구 해제와 같은 신호는 경험 많은 투자자들의 매수세를 부르기 때문이다. 부디 많은 독자가 이 지표를 투자에 잘 활용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 53% (118p) | 2026.07.14 06:40
역대 정부는 새로운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입주 시기에 맞춰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헛된 공약으로 끝났다. 우리가 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 59% (131p) | 2026.07.14 06:54
펀더멘탈(fundamental) 대비 실제가 수준을 꾸준히 추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곳이기에, 소득 흐름을 잘 관찰한다면 2022년 같은 폭락장이 왔을 때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18장에서 가상의 시나리오를 활용해 주택 매매 타이밍을 잡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니,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66% (147p) | 2026.07.14 07:14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단일한 요인 하나로 전체 부동산 시장을 설명하려 들면 위험하다. 1970~1980년대에는 수출과 주택 공급이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지역별 인구 이동, 금리 변화, 품목별 수출 동향 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 40% (91p) | 2026.07.13 07:53
일본 사정에 밝지 못한 이들은 아직도 "일본 부동산 장기 불황"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일본 부동산 시장은 2000년대 중반 고이즈미 개혁 때 바닥을 쳤으며, 아베노믹스 10년 동안 역사상 최고치에 근접하는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공급 축소와 메가시티 인구 집중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지며, 도쿄 등 대도시 위주로 가격이 상승하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중이다. 한국보다 인구 감소가 더 빨리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사례는 좋은 투자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 66% (147p) | 2026.07.14 07:18
첫 번째 변화는 2000년대 "고이즈미의 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2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정부는 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주택 공급을 끝없이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대대적인 정책 편향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1962년 설정된 '국토 균형 발전' 계획을 폐기하고, 2001년 '도시 재생 본부'를 설치해 이른바 '콤팩트 시티' 전략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에 공공 주택을 짓는 정책을 폐기하고, 세계 최대 클러스터인 도쿄-요코하마 등 핵심 지역 노후 건물을 초고층 오피스 빌딩으로 재건축, 재개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었다. 🔗 68% (150p) | 2026.07.14 07:20
부동산 시장을 부활시킨 또 다른 요인은 '아베노믹스'였다. 2 🔗 68% (150p) | 2026.07.14 07:21
일본 부동산 시장의 부흥을 이끈 세 번째 요인은 외국인의 참여다 🔗 68% (152p) | 2026.07.14 07:21
여기까지의 분석을 보며 "지방은 어떻게 합니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의 좁은 견해로는 한국이 17장의 일본처럼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거대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세계의 부유층이 몰려드는 대도시의 일부 지역만 가격이 상승하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사용 가치의 상승에 따라 지방 아파트와 주택 가격도 상승세를 이어가겠지만, 인플레를 이길 만큼 충분한 상승세가 지속되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 74% (164p) | 2026.07.14 12:24
내 집을 네 번 정도 매도하다 보니, 어떨 때 팔아야 제값을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감이 생겼다. 가장 좋은 타이밍은 '버블'이 발생했을 때인데, 이때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은 기대감 때문에 매매 결정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18장에서 소개한 다양한 징후를 잘 기억한다면, 다음번 버블 때 성공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 70% (155p) | 2026.07.14 12:19
필자가 9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갭은 주택에 대한 일종의 콜 옵션이다. 그리고 콜 옵션 가격은 현재 주택 가격과 미래 성장 잠재력에 따라 결정된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갭이 적다는 것은 미래 발전 가능성이 낮은 주택이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갭이 작다."라며 주택을 매수하는 사람이 늘고 상승 폭이 커질 때는, 시장이 투기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71% (157p) | 2026.07.14 12:16
물론 필자는 상당한 시세 차익을 올린 상태였기에 마음 편하게 매도했음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차익을 실현해 차도 바꾸고 이사 가는 집 인테리어도 멋지게 꾸밀 돈이 생긴다는 점이 가장 큰 매도 요인이었을 것이다. 다만 주택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더 오를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매도 타이밍'을 잡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장을 썼다. 🔗 71% (158p) | 2026.07.14 12:19
세 번째 포인트는 대단지인지 여부다. 필자가 33년간 경제 분석가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금융 위기를 겪었는데, 사태가 어떤 식으로 수습될지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원칙이었다 🔗 73% (161p) | 2026.07.14 12:22
더 나아가 미국의 리츠 ETF는 자산 배분의 대상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림 19-2〉는 지난 15년 동안 미국 리츠와 한국 주식 그리고 예금에 각각 100만 원을 매월 저축했다고 가정한 포트폴리오인데, 얼마나 탁월한 성과를 기록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림 19-2〉의 이름을 '탈무드'로 정한 이유는 1/3은 부동산, 1/3은 사업, 그리고 1/3은 현금에 투자하라는 유대인 특유의 투자법에서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다 🔗 73% (163p) | 2026.07.14 12:24
필자는 미국의 ETF를 검색할 때 'ETFdb.com'을 애용한다. 이 사이트에서 'real estate'를 찾으면 미국 리츠 ETF도 모아 놓은 페이지를 볼 수 있다.1 🔗 92% (205p) | 2026.07.16 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