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코칭 등으로 바쁜 주간이 끝나고
아내와 아들을 위한 저녁을 차리다가
문득 손이 멈췄습니다.
오늘은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지 고민하고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확인한 다음
부족한 건 뭘로 대체할지 머릿속으로 계산합니다.
아이가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설득해서 먹게 만들기도 하고
아니면 다시 다른 메뉴를 만들면서
일정이 없다면 이런 시간들을
가급적 매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문득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매일 집에서 봤던 장면이었으니까요.
다만 그때는 이게 매일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 혹은 노동 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 세 번, 다른 반찬으로, 따뜻한 국과 함께
식탁 위에 밥상이 늘 당연하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면 계절 과일을 후식으로 먹었습니다.

어렸던 저는 이런 것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
친구들이 신는 유행하는 브랜드 운동화, 옷 혹은 청바지를
갖고 싶다고 툭 던지듯 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내에 나가자고
이야기를 하시더니 매장으로 가서 사주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를 늘 덧붙이셨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정작 그렇게 말을 하시면서도
원했던 것들은 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냥 어른들이 흔히 하는 잔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그 착각은 어른이 되어서도 한동안 계속 이어졌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쯤은
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정말 어려운 것을 제외하고는
이야기하는 것들을 챙겨주셨습니다.
기죽지 말라고 말은 안 하셨지만
늘 그렇게 채워주셨던 겁니다.
다만 그런 마음을 알지 못하고
원하면 어떻게든 생긴다는 것만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취업을 하고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들은 소비로 이어졌습니다.
한정판 스니커즈와 스트릿 웨어를 모으는 데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발장에는 어느새 서른 켤레가 넘는 신발이 쌓였고
매달 나오는 카드값은 300만원을 훌쩍 넘길 때가 많았습니다.
당연히 통장은 늘 마이너스였습니다.

방 한편에 쌓여가는 상자들을 보며 흐뭇했지만
정작 잔고는 외면했습니다.
원하면 결제 한 번으로 물건이 눈앞에 나타나는 게 그냥 좋았습니다.
그러다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이너스인 통장을 마주했습니다.
신발장에 가득 찬 신발들과 옷들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첨의 기쁨도, 새로운 것을 살때의 설렘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는 것.
몇년간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하며 쓴
수천만원이라는 돈은 단순히 사라진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 돈으로 살 수 있었던 자산,
그 돈이 시간이 지나며 불어났을 가치까지
생각한다면 그보다도 훨씬 더 큰 돈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걸 우리는 기회비용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결국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그 순간 다른 무언가를 포기한 값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때부터 조금씩, 돈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투자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게 하나 더 있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건
돈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노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투자를 하다보면 수익이라는 건
늘 나중에 결과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수익을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시간과 노력이라는 것을
먼저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든 부동산 단지에 투자를 하고 싶지만
생기지 않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
다섯 번을 가고, 또 가고, 또 갔습니다.
한 번 스윽 둘러보고 결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신발, 옷 등을 살 때는 결제와 동시에 물건을 손에 쥐었지만
투자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먼저 치열하게 대가를 치르고
시간이 지나서야 결과를 얻게 됩니다.
한방을 노리는 투기와 진짜 투자의 차이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투기는 선불 없이 결과만 바라는 것이고
투자는 반드시 '선불'이 필요함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투자자로 자리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키우면서
어린 시절의 밥상과 어머니의 마음
신발과 옷을 사 모았던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이제 제가 부모가 되어 밥상을 차리고
아이가 무언가를 원할 때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하셨던 그 말,
그냥 잔소리인 줄 알았던 그 한마디
"세상에는 공짜가 없단다"는
사실은 정확한 문장이었습니다.
저녁을 차리다 손이 멈췄던 그 순간,
그 말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생각했습니다.
당연해 보이는 모든 편안함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 먼저 치른 대가가 있고,
언젠가는 그 대가를
스스로 치러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지름신이 오거나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 딱 3초만 멈추세요.
그리고 이 돈으로 내가 살 수 있는 자산은 없는지 찾아보세요.
지금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 투자 공부,
지루한 발품과 임장을 하면서 조급해하지 마세요.
그것이 나중에 얻게 될 결과인 수익을 위한
‘선불’을 지불하는 과정임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세요.
너무나 당연하다 생각해서 지나쳤던
일상의 편안함을 하나 찾아보세요.
그리고 배우자나 부모님께
"늘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고마워"라는
짧은 메시지 한 줄을 보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