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월부 튜터 진심을담아서입니다.
오늘은 평소의 글과는 조금 다른
제 개인적은 경험에서 깨달은
자기 신뢰에 대한 글입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그 힘이 되어주는 코어기억이라는 게 있는데
굳이 따지면 이 기억은 제게 그 코어기억입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예술가가 들려준 이야기가
무더위에 지쳐가시거나,
새로운 목표를 꿈꾸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뜬금없지만 캄보디아 얘기로
제 생존기를 작성하려합니다.
캄보디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신가요?
평화로움? 종교스러움? 앙코르와트? 관광지?
저에게는 선입견을 바꾼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준 나라로 남아있습니다.
대학생 시절 학교의 지원을 받아,
캄보디아 해외봉사를
1달 동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아시아 최빈국으로
(LDC, Least Developed Countries)
UN에서 정한 '공식적'으로
가장 못 사는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독재체제 및 대놓고 보여주는
정치인들의 부패로
국민들은 정치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는
자원 및 기술이 부족하거나,
약간 있는 자원도 주변에 빼았기는 터라
노동력 중심의 1차산업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1960년대에는 베트남과의 전쟁,
1970년~1990년까지
무려 20년 간 내전이 있었습니다.
수도인 프놈펜에 가면
'킬링필드'라는 '관광지'에
사람들의 유골이 탑처럼 쌓여져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황폐화가 심한 나라
모든 나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부패했으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하며
사회적으로 큰 상처를 갖고 있는 나라는
장애/성병 이슈가 늘 있는데요.
캄보디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현지인과 함께 머문 기술학교 숙소에는
팔다리 모두 있는 분이 드물었고
주로 봉사를 했던 보육원의 아이들 부모님은
모두 에이즈로 사망한 분들이었습니다.
캄보디아에 머물면서
방문했던 곳 중 하나인 NHCC라는 곳은
위에서 제가 언급한 캄보디아의 상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상징적인 곳이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NHCC
(New Hope for Cambodian Children)는
조금 특별한 보육원이었습니다.
사실상 고아원인 이곳은
학교의 역할을 겸하여
미국인 재단(클린턴 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곳입니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운영되고,
18살이 되면 반드시 퇴소해야하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영어로 운영되는 수업, 질 높은 숙식 제공 등
여러 방면에서 꽤 괜찮은 보육시설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사연이 많은 곳입니다.
이곳의 아이들의 부모님이
에이즈로 사망하였고,
아이들 본인은 모두
HIV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HIV바이러스는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위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바이러스가 양성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가 아는 그 에이즈로 변하게됩니다.
캄보디아와 같이 매우 열악한 환경과
부실한 의료시설이 있는 곳이라면
생존확률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줄 게 됩니다.
즉 아이들은 모두 몸 속에
시한폭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장난기 많고 마냥 해맑기만한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폭탄을 안고 사는 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던 중 지본이라는
미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지본의 나이는 당시 20살로
그 역시 NHCC 출신 고아였습니다.
지본은 뛰어난 미술실력으로 18살에
NHCC를 졸업함과 동시에 미술선생님으로서
캄보디아 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지본의 미술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연필이나 볼펜만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안목이 없는 제가 보기에도 정말 멋졌습니다.
본인 상체보다도 훨씬 큰 도화지에 몰입하는
지본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깊었습니다.
아래는 지본의 작품입니다.
(모두 지본이 공식적으로 오픈한 작품입니다)


감상하던 중 의구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모든 그림이 검은색이었던 것입니다.
연필이야 흑심을 많이 쓰니 그럴 수 있었지만,
볼펜도 검은색만 사용하였는데요.
지본에게 검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
를 물었습니다.
난 어릴 때 인생은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에
나에게 남은 건 나 뿐이었다.
나를 위로해줄 건 그림밖에 없었다.
그림으로 나의 어두운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난 우울한 세계를 표현하려고
검은 그림만 그렸다.
그러나 나의 그림을 보고 오히려
감탄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난 행복과 슬픔은
별개가 아니고
늘 공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내 불행을 위한 게 아닌,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지본
검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듣기 전까진
지본의 인생이 가혹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판단한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지본의 불행 뒤엔
행복 또한 숨겨져있었습니다.
지본의 쉽지 않은 환경은
지본의 예술혼을 더욱 불타게 해 주었고,
또 그 예술을 통해
다른 이의 삶을 위로해 주었으며,
그로 인해 자신도 위로받았던 것입니다.
귀국 후 3년 뒤 재방문하여
지본을 만났을 때도 지본은 여전히
'행복'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혼자 그림에 몰두하기 바빴던 과거와 다르게
동료도 자발적으로 소개시켜줄만큼
관계의 폭도 커진 모습이었습니다.

지본의 예술관을 통해
행복이라는 것은 실재한다기보다는
'그렇게 믿기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닐까'
‘그렇게 믿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행 역시 실재하는 존재이기보다,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깨달음을 오래 지키지 못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스스로를 믿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음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관계 속에 지쳐가거나 원하는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이게 될까? 하지 말까? 포기할까? " 하는 어려운 생각들이 쉽게 오곤 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하면 할 수록 완벽하게 될 것 같은 일만 맡아서 하게 되고, 무리가 될 것 같은 일이나 일정은 모두 거절하거나 망설이는 태도가 생겼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교훈은 잊은 채 불행을 항상 먼저 염려하고 남의 성취에 '나는 절대 안될 거야'를 되뇌며 행복과는 거리가 먼 길로 스스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이미 충분히 회복한 순간에도 안될 이유만 찾는 저였습니다.
그러다가 열심히는 살아 왔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그동안 살았던 것과 아예 다른 방향으로 살아보자’는 마음을 주변에 있는 부자나, 행복한 성취주의자들을 보면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목표는 믿는 것이지 의심하는 것이 아니야.
부자의 언어, 존 소프릭
다시는 한 번의 시련으로 모든 것을 퇴행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적은 제 꿈을 믿어보기로 결심합니다. 거창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도 저보다 앞선 선배님들이 걸어간 길을 반 발짝씩 따라 걸었을 뿐입니다.
임장이 너무 어려웠지만 같은 조의 조장님을 따라 무작정 걷고 또 걸었고, 독서가 투자기간을 늘려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에 파묻혀 지내봤습니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투기꾼’ 마인드에서 한번은 기준을 잡고 투자할 줄 알는 투자자가 되고 싶어서, 조금씩 배운 양식대로 제가 알고 있는 수준을 정리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임장으로 향한 걸음이 몇만 보가 되어 있었고, 읽은 책은 수십 권을 넘겼고, 임장보고서 등의 제가 알고 있는 것을 투자로 정리한 것은 몇백 장이 쌓여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숫자를 목표로 삼았다면 아마 시작조차 못 했을 겁니다. 그저 '오늘 하루치'만 반복했을 뿐인데 어느새 저도 모르게 쌓여 있던 숫자들입니다.
그러자 이게 될까? 하지 말까? 포기할까? 했던 것들이
이게 되네! 해보자! 될 때까지! 로 변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장애물을 만나고 어떤 좌절을 겪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로 모든 것을 잠시 멈춰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고, 긴 터널을 홀로 달려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제게 회사, 가족과 목표 그리고 행복은 평행선에 놓인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끌어주는, 함께 달려주는, 자극을 주는 동료, 선후배가 가득한 좋은 환경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달리다 보니 건강도, 행복도, 꿈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순자산 10억 등 높은 목표에서 '이게 될까? 하지 말까?'를 붙잡고 몇 달째 제자리이시라면, 그 일을 오늘 당장 '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몇만보 걸음을 목표로 시작한 게 아니라 첫 한 걸음을 어설프게 다녀본 게 시작이었으니까요.
대신 딱 하나만 정해보세요. 그 일의 가장 작은 '하루치'가 무엇인지 정해보세요.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될 이유'를 찾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모든 걱정과 염려 뒤에는 꼭 밝은 면이 있습니다. 내가 가고자하는 길을 믿고 작은 걸음이라도 걸어가시다보면, 나도 모르게 훌쩍 걸어온 길을 보실 수 있으실 거에요.
최근에 조금 힘드셨더라도 아주 잠깐은, 행복하다고 믿어서 행복해지는, 할 수 있다고 믿어서 해내시는 소중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아래 사진은 자주 들고다닌
문서판 뒷면의 붙인 캄보디아 여행 사진입니다.
언젠가 다시 가볼 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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