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Übermensch)란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데 머물지 않고,
스스로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다. 주어진 고통과 상황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의지로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넘어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뜻한다.

01
일요일 아침이었다
체리색 몰딩이 둘러진 거실 바닥에 앉아
텔레비전 속 디즈니 영화를 보고 있었다
화면 속 공주는 노래를 불렀고,
왕자는 말을타고 숲을 달렸다.
식탁 위에는 엄마가 깎아둔 사과가 있었고,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은 거실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그때 나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간다고 생각했다.
만화영화 한편이 끝나는 것도 아쉬웠고,
다음 일요일 아침까지 기다리는 일은 너무 길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02
그날도 일요일 아침이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이어폰에서는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창밖으로는 익숙한 풍경들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윤도현밴드 - 나는 나비
무릎 위에는 문제집이 놓여 있었지만
나는 자꾸 바깥을 바라보았다
줄지은 상가들과 바삐 걷는 사람들,
아직 가보지 못한 낯선 거리
그 풍경 속에 미래의 나를 하나씩 그려 넣었다.
그때의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딘가에 도착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어폰 속에서는 노래가 계속 흘렀다
나는 나비야
조금만 더 가면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03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그려왔던 목적지에 도착했다.
직장에서 열심히 하면 앞으로 갈 수 있고,
잘해내면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는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마음 한편은 어딘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잘 흘러가고 있는데도
가끔은 내가 아주 오랫동안
한자리에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에 출근하고, 주어진 일을 해내고,
무사히 하루를 마치는 동안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갔다.
월요일이 지나면 금요일이었고,
계절이 바뀌었다 싶으면
어느새 또 한 해가 끝나 있었다.
어릴 때는 다음 일요일이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멀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일요일 밤이 돌아올 때마다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 그토록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었는데
왜 자꾸만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정말 여기가
네가 가고 싶었던 곳이야?
자유는 결코 미리 예고하며 찾아오지 않는다. 맑은 하늘 아래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너무도 익숙했던 세계가 어느 날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말 뒤에 숨을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때 인간은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 ‘이곳’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그것은 한때 자신이 가장 사랑했고,
가장 안전하다고 믿어왔던 세계다.
- 위버멘쉬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용기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도 익숙했던 일상이
어제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데서 온다고 한다.
잘 살아왔다고 믿었던 삶에
작은 틈 하나가 생긴다.
정말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처음에는 그 질문을 애써 외면하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속의 목소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짙어졌다
내가 떠나고 싶었던 곳은
불행한 세계가 아니었다.
그곳은 한때 내가 가장 사랑했고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세계였다
나는 직장 밖에서
내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세계는 투자였다.
그 세계는 낯설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투성이였다.
잘해온 것을 내려놓고
다시 서툰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디즈니 만화 영화를
보던 아이가 내 안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 아이는 평소에는 조용했다.
괜찮은 어른처럼 살아갈 때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순간에는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나 잘못했어?”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해?”
그 순간의 나는 혼날까봐 겁먹고
눈치를 보는 아주 작은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마음속 깊은 동굴로 들어갔다.
부족했던 장면을 되감고 왜 나는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몇 번이고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그 아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 컸으니 이 정도 일에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다그쳤다.
하지만 혼낼수록 아이는 더 깊은 동굴로 숨어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아이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나부터 나를 보듬어야 했다.
많이 무서웠구나
많이 잘하고 싶었구나
그래서 이번 일이 더 버거웠겠구나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고
울음이 조금 잦아들 때까지 기다린 뒤
다시 손을 내미는 것
그래도 우리는 가야 해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아무것도 깨지지 않은 채 앞으로 갈 수는 없다
익숙한 방식이 찢어지고
단단하다고 믿었던 자존심이 찢어지고
내 한계를 똑바로 마주하는 순간을 지나야 한다
익숙한 내가 깨질 때 새로운 내가 시작된다

나는 위버멘쉬란 넘어진 자신을 버리지 않고,
매번 다시 일으켜 끝내 함께 데리고 나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수없이 넘어질 것이다
생각한 만큼 해내지 못해 울고
내가 선택한 길을 의심하면서
다시 마음 속 동굴로 숨어버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다
나를 끄집어낼 단 하나는 울고 있는 나를 버리지 않고
다시 데리고 나오는 한 문장이다
다 울었어?
그래도 우리는 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