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자로 가는 장거리 여행 중인 목부장입니다.
이 글은 제가 내 집 마련을 결정하기까지 겪었던 상황과 그 과정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담은 글입니다.
투자와 내 집 마련 사이에서 고민하고 계시거나,
지방에서 시작해 수도권까지 투자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우 긴 글입니다.)
아래는 투자 여정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연도별 투자 여정 정리
23년 투자 1년차 | 투자자의 길을 시작하다
노후에 대한 고민을 계기로 투자를 시작하고, 7천만 원의 종잣돈으로 지방 소액투자에 도전했습니다.
당시 전고점 대비 크게 조정된 시장에서 울산·창원·김해를 비교하며 저평가와 환금성을 기준으로 첫 투자처를 찾았고, 김해에 1호기를 심었습니다.
24년 투자 2년차 | 비교평가 실력을 키우다
앞마당을 계속 넓히며 다양한 지역과 단지를 비교했고, 같은 투자금으로 더 좋은 자산을 찾는 비교평가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추가 투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장과 시세 분석을 멈추지 않았고, 월별로 수많은 단지를 비교하며 투자 실력을 쌓았습니다.
이때 만들어 둔 2~4급지 앞마당이 훗날 내 집 마련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25년 투자 3년차 | 기회를 놓치는 경험을 하다
김해 1호기를 매도하며 투자금 2억 원을 만들었고, 본격적으로 수도권 투자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9월 한 달 동안 앞마당과 매물 확인을 쉬면서 “서울은 기다려줄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했고, 10.15 규제로 서울과 구리 투자 기회를 놓쳤습니다.
결국 비규제 지역인 부천으로 방향을 전환해 투자를 마무리했고, 이 경험을 통해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으며, 기회가 왔다고 판단되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6년 투자 4년차 | 투자와 내 집 마련의 균형을 찾다
시장 환경과 앞으로의 투자 가능성을 다시 고민하면서 단순히 채수를 늘리는 것보다 더 좋은 자산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한 목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만들어 놓은 수도권 앞마당과 비교평가 실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매도·매수를 진행했고, 결국 평촌에 내 집 마련을 결정했습니다.
내 집 마련을 통해 ‘돈을 많이 버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를 수 있으며, 가족의 행복까지 고려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1년도 천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결혼하고
안정적인 삶을 그렸기에 자연스럽게 부동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1년도는 아시다시피 엄청난 불장이었고,
천안의 집값이 10억 원을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천안조차도 10억이 넘는데 내가 살 수 있는 집이 있을까?’
라는 걱정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투자’라는 세계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읽고 유튜브 강의만 보면서 어떤 기준으로 집을 사야 하는지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같이 근무하던 선배의 권유로 ‘월급쟁이 부자들’을 알게 되었고,
23년도 본사 발령을 받으면서 경기도로 이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기초반을 듣기 시작했습니다.(그전에 유투브만..)

(당시 닉네임은 목이 였습니다. ㅎㅎ)
내 집 마련이 아니라 노후의 안정을 위해 부동산 투자자를 꿈꾸다!
처음 열반스쿨 기초반을 들으면서 내 집 마련도 중요하지만,
은퇴 이후의 ‘노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내 집 마련을 하고 평생 일하면 되겠지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고 회사에서도 원할때는 젊을 때라는 생각이 강의를 들으면 들을 수록 머리에 박혔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처음으로 은퇴 이후의 삶까지 고민하게 되었고,
비전보드를 직접 작성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단순히 내 집 마련만이라고 생각했지만,
‘투자’를 공부하고 행동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투자자로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비전보드인데요.
포르쉐 카이엔과 쇼핑을 여유롭게 하는 것만 제외하면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네요. ㅎㅎ
첫 번째 투자 김해에 1호기를 심다(투자 1년차)

월부에 입성한 지 1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1호기를 심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친구와 교제 중이었지만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이었고,
수중에 약 7,000만 원의 투자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액으로 지방 투자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소액으로 빠르게 불려서 2년 뒤 100% 수익을 내서 1억 4천만 원이 되면 그때는 수도권에도 투자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울산, 김해, 창원 등 당시 인기 있던 지역들을 임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우리 튜터님의 창원·김해 특강이 그 선택을 더욱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김해를 투자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저평가와 환금성.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지방 앞마당은 울산 남구, 창원 성산구·의창구, 김해 정도였습니다.
울산 남구와 창원 성산구에서는 땅의 가치가 높은 구축 단지들을 봤고,
김해에서는 상대적으로 수요는 적지만 선호도가 높은 신축 단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방 투자 특성상 추후 매도까지 고려한다면 신축이 더 먼저 매도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매도 광고 이후 1달 반 정도 기간만에 매도를 하게 됩니다. 환금성 짱…)
또한 창원 성산구와 울산 남구의 구축 단지들과 비교했을 때
김해의 신축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형성되어 있어 저평가되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투자 1년 차에는
‘23년도에는 내가 가진 자산과 투자금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중소도시 신축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고, 김해에 첫 투자를 진행하게 됩니다.

중소도시에 이런 신축이? 하면서 놀라면서 임장했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ㅎ
늘어나는 앞마당과 보유하면서 생기는 불만들(투자 2년차)
1호기는 투자 인생에서 가장 좋지 않은 물건으로 시작하게 된다고 선배 투자자분들이 말씀하셨는데요.
그래서일까요.
대구, 대전, 부산, 울산, 부천 등 여러 지역의 앞마당을 계속해서 만들면서,
1호기와 같은 투자금으로도 더 좋은 가치를 가진 자산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1호기를 매도하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 커졌습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계속 ‘노사위원장’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고,
공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격이 오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잘못 산 게 아닐까?’
‘역시 중소도시는 안 되는 걸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분명 매수할때 알고 샀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매도를 고민했지만,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매도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더 좋은 가치의 단지로 갈아탈 수 있는 자산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1호기는 보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편 투자를 시작한 이후 결혼 준비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결혼식 비용 등으로 자금이 사용될 예정이었고,
자연스럽게 한동안 추가 투자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투자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투자 활동까지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예비 장인어른의 대구 집과 부모님의 조합원 물건 매도를 막는 등,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계속해서 찾아 실행했습니다.
(부모님집, 장인어른집 모두 수익구간이고 복기하면서 지방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비교평가 마스터가 되자’는 목표를 세우고
중간 지역부터 상·하단 지역까지 다양한 곳을 임장하며 비교평가 실력을 키웠습니다.
한 달에 40페이지 정도의 단지를 비교하는 장표를 정리하고,
지역 전체의 시세를 직접 따보면서 어떤 지역과 단지가 더 좋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고민했습니다.
(이때 코칭도 잠깐 사라진 시기라 더더욱 더 열심히 시세와 비교평가를 했던 것 같습니다.)

단지분석만 비교만 36개 한번 뽀개도 보았고
이때 만들어 놓은 2~4급지 선명한 앞마당은 당시에는
단순히 투자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었던 앞마당들이었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집 마련이라는 새로운 선택의 순간에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2~4급지 모두 언덕이 참 많더라고요..

[목부장] 리스크는 바라 나 자신! 두번째 거래 계약을 하면서 한 크고 작은 실수(1등 뽑기가 다가 정말 아니더라고요)
결혼을 하며 합쳐진 예산으로 김해에서 수도권으로! (투자 3년차)
25년도 결혼과 동시에 2번의 실전반을 연속으로 수강하고,
이어서 학교까지 다니게 되면서 투자자로서 정말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수도권 투자도 진행하게 됩니다.
우선 그동안 ‘노사위원장’이라고 계속 놀리던 단지를 소정의 수익을 보고 매도하면서
수중의 투자금이 2억 원으로 늘어났습니다.(돈에 꼬리표가 없다는 것을 느낀 부분)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5천만~1억 원으로 투자할 단지를 고민하던 투자자였는데,
이제는 2억 원대 투자금으로 수도권을 노릴 수 있는 투자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시 2억 원대 투자금으로는 수도권 4급지까지 접근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투자뿐만 아니라 실거주 가치까지 함께 고려하며 여러 단지를 비교하고 TOP 3를 뽑았습니다.
실거주를 함께 고민하게 된 계기는 줴러미 튜터님의 투자 코칭에서 ‘실거주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연 저축액과 투자금을 보며 4급지 정도에 내집 마련을 미리 구하는 것 여차하면 실거주 아니면 시스템으로 돌리는 방향)
투자를 우선순위에 두되, 앞으로 우리가 직접 거주할 수 있는 집까지 함께 고민하면서 투자 선택의 폭을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목부장] 2년만에 첫 투자코칭을 받아보며 내 생각과 방향을 검증 완료!
안일한 생각과 행동이 불러온 10.15 참사
2억대 투자금으로 바로 매수를 했다면 매우 행복한 상황이었겠지만,
결혼 이후 팀장 승진 평가가 진행되고 처음으로 2번의 연속 실전반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예전과 같은 열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허씨허씨 튜터님과 실전반 조장을 하면서 고민을 많이 털어놓았고,
“위로해주시면서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하겠다”는 말씀에
힘을 내어 다시 물건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열심히 실전반 활동을 하는 와중에 처음으로 실전 MVP 받게 되어 학교를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9월 한 달 동안 열반스쿨 중급반을 수강했고,
매달 꾸준히 하던 앞마당 늘리기를 처음으로 쉬게 되고 그 시간을 유리공과 고무공을 지키는 데 투자했습니다.
사실 휴식에는 안일한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6월 규제 이후 수도권이 잠잠해지겠지. 서울은 기다려 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한 달을 보냈습니다.
이후 10월, 김인턴 튜터님과 함께 25년도 가을학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투자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학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 큰 뉴스가 터집니다.
바로 10.15 규제였습니다.
5일장이 열리면서 당시 미리 준비하고 있던 투자자들은 앞다투어 투자를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9월 한 달 동안 매물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자할 수 있는 단지는 물론이고,
투자할 수 있는 지역까지 흔들리면서 꿈에 그리던 서울 입성이 좌절됩니다.
결국 유일하게 비규제 지역이었던 부천으로 눈을 돌렸고, 매일 살다시피 매물을 털기 시작했고 매수하게 됩니다.

매일 살다싶이 하다 보니 사장님의 찐 추어탕 맛집에서 저녁도 같이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노사위원장'이라고 놀리고 쳐다 보기도 싫었던 1호기, 결국 수도권 투자로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목부장]
[목부장] 20대에 심은 중소 1호기가 강남 1시간 권 수도권 시스템이 되다.(긴글 주의)
당시에는 부천 투자뿐만 아니라 규제지역이라도 3~4급지 실거주를 고려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간 저축액과 주담대 이자 비용을 계산하고,
와이프의 은퇴까지 고려해 자금 흐름을 생각해보니
실거주보다는 투자 채수를 늘리는 방향이 제 목표에 훨씬 더 맞는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원래는 9월 한 달 열반스쿨 중급반을 들으면서 구리 앞마당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8호선 연장 이후 가격 상승폭은 크지 않았지만 전세가 상승률이 높았고,
같은 위상의 수지나 평촌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행동하지 못했고, 구리 투자 기회도 놓치게 됩니다.
결국 9월 한 달의 아쉬운 선택으로 서울에 들어갈 수 있었던 기회와 구리 투자 기회,
두 가지를 모두 놓치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복기하면서 한 가지를 뼈속 깊이 새겼습니다.
기회가 있다고 생각이 들면, 무조건 행동하자.
기회는 언제든 다시 올 것 같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그때의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순간이었습니다.
등기 이후 3개월 만에 매도를 결정하고 평촌의 신축으로 내 집 마련을 하다(투자 4년차)
26년 겨울학기 프메퍼 튜터님과 학교를 시작하고,
이후 1 on 1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채수 투자가 쉽지 않을 수 있고,
더 좋은 자산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기회와 와이프와의 행복한 신혼 생활을 위해
‘실거주 투자’를 고려해보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즉, 25년 가을학기와 26년 겨울학기의 시장 환경이 달라진 만큼,
채수를 무리하게 늘리기보다 더 좋은 자산 1채로 실거주를 고려한 투자를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투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잔금도 부동산 사장님의 돈을 빌려서 할 만큼 힘들었던 투자였기에,
막상 매도를 결정하려니 ‘에고’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투자의 교훈이었던 ‘기회가 왔을 때 행동하자’를 다시 생각하며,
기회와 비용을 계산해보고 매도를 결정했습니다.
이때 제가 생각했던 것은 인생 비전보드의 목표가 순자산 47억이지,
부동산 채수가 많은 투자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야 그 목표에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현재시장에서 실거주 가치를 고려한 투자 현재 상황에서 더 좋은 자산을 선택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때 앞서 투자 2~3년 차에 만들어 놓았던 3~4급지 앞마당이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빠르게 물건을 찾을 수 있었고, 결정 이후 매도는 4주 만에, 매수는 1주 만에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매도는 제가 일부러 2주 정도 물건을 더 찾아보느라 질질 끌기도 했지만요.

광고 없이 2주 만에 매도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목부장]

와이프 울기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평촌 대장 급 단지를 계약했습니다. [목부장]
내 집 마련은 투자와 다르다
실거주를 고려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와이프와의 선택 갈등이었습니다.
와이프는 구축에 방 2개여도 절대 언덕을 오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반면 저는 언덕이 있더라도 입지 가치와 선호도가 높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관악·봉천과 구성남 단지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날 언덕을 오르고 나서의 와이프의 표정은 잊을수가 없더군요…
그래도 같이 발사진 한컷!
그러다 보니 구성남의 단지를 매임하는 과정에서 와이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결국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렌지 하늘 튜터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실거주는 가족의 취향과 선호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부장님, 앞으로 최소 2년, 길게는 그 이상 거주하게 될 텐데 평촌의 단지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돈은 조금 덜 벌 수 있어도 와이프의 만족도는 훨씬 높을 거예요. 거주하면서 불행한 것보다 행복한 게 낫지 않을까요?”
프메퍼 튜터님과의 매물 코칭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장님, 와이프 말은 또 반영하셨나요?”

"왜 와이프 의견은 반영 안 하셨어요?" 매물 코칭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질문 [목부장]
결국 조금 덜 벌 수 있더라도 자산이 우상향할 수 있고, 그 기간 동안 가족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을 더 중요한 가치로 두게 되었습니다.
즉 내집 마련 경험을 통해 돈을 많이 버는 것과 잘 사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입니다.
처음 김해에 1호기를 투자할 때만 해도
제가 몇 년 뒤 수도권에서 내 집 마련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7천만 원으로 시작해서 1억을 만들고, 2억의 투자금을 만들고,
수많은 앞마당을 만들면서 결국 수도권의 여러 지역을 비교하고
내 집까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특별한 투자 비법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공부하고, 직접 보고, 비교하고, 행동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단순히 투자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었던 앞마당들이
결국에는 내 집 마련을 결정하는 순간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앞마당을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당장 투자할 수 없더라도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년 전에는 투자할 수 없었던 지역이 지금은 내 집 마련의 후보지가 되었고,
당시에는 단순히 공부한다고 생각했던 임장이 결국 지금의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평촌에 내 집을 마련했다고 해서 저의 투자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면서
투자자로서도 계속 성장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을 어떻게 더 좋은 자산으로 만들어갈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제가 처음 비전보드에 적었던 순자산 47억이라는 목표에 어떻게 다가갈지
다시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지방에서 시작해서 수도권까지 수많은 앞마당을 만들고, 수많은 고민과 실수를 반복하면서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혹시 지금 저처럼
‘투자를 해야 할까, 내 집 마련을 해야 할까?’
‘지방에서 시작했는데 수도권까지 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정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고, 앞마당을 만들고, 비교평가하고,
기회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던 선택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상황은 항상 긍정적으로 빠르게 변화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들을 채워나가면서 투자 생활을 힘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투자자의 길을 걸을 때 옆에서 응원해주고 함께 해주지 못한다고 미안해 하는 와이프, 그래도 매일 같이 운동하고 대신에 가정을 같이가꾸어 줘서 고마워!!
첫 번째 학기부터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와 실거주에 대한 방향을 많이 고민하게 해주시고, 제 투자 역치를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신 김인턴 튜터님 감사합니다.
처음 부반장을 맡아 감도 잡지 못하고 이런저런 고민만 하고 있을 때, 결국 중요한 것은 행동이고, 부족한 부분은 행동하면서 수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프메퍼 튜터님 감사합니다.
운 좋게 늦게 합류하게 되었지만, 누구보다 와이프와의 고민과 어려움을 진심으로 들어주시고 가족과 함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같이 고민해주신 오렌지 하늘 튜터님 감사합니다.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첫 반장이라 아직 서툰 부분도 많고, 잔금 문제로 허덕이고 있지만, 항상 걱정해주시고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도록 힘을 불어넣어주신 진심 튜터님 감사합니다.
실전반을 하면서 정말 포기하고 싶었고, ‘이제 내 집 마련만 하고 끝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때 위로해주시고, 항상 응원하겠다고 말씀해주신 허씨허씨 튜터님 감사합니다.
그때 통화가 끝나고 살짝 눈물이 났던 것은 비밀입니다. ㅎㅎ
그리고 제 첫 투자였던 김해 1호기를 계속 보유해야 할지, 매도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에 투자 기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리마인드해주시고 방향을 잡아주신 드림텔러 튜터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감사 인사를 모두 전하지 못했지만,
이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폭폭즈, 그리고 힘들 때마다 전화와 카톡으로 응원해주신 모든 동료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혼자였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저 역시 누군가에게 필요한 순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