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니근데진짜하면된다 입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화려한 결과만 보고 정작
그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 채널에서는 매일 한 명씩,
지금은 성공했지만 한때는 우리와 다르지 않게
작게 시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해요.
오늘은 현대그룹을 일으킨
정주영 회장님의 이야기를 가져왔어요.
오늘 이야기를 다 읽으시면
정주영 회장님의 삶의 태도에서
큰 울림을 느낄 수 있으실거예요.
지금 가진 게 없어서,
혹은 확신이 부족해서
시작조차 망설여지는 분이라면
그 마음도 조금은 편해지실 겁니다.
결국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닌
시작을 해봤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실 거니까요.
현대하면 ‘정주영’이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나요?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까지
지금 우리가 아는 '현대'라는
이름을 만든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정주영 회장은 사실
소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고,
몇 번이나 가진 걸 전부 태우고
빼앗겼던 사람이기도 해요.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도전한 거의 모든 일 에서요..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게 될까? 안될거 같은데..”
걱정이 앞서는 분이라면
오늘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세요!
소를 팔아 도망친 가출 청소년
정주영 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부 집안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정주영 회장의 인생에 주어진 길은 하나였습니다.
아버지처럼 평생 이 가난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
하지만 그 길이 너무 싫었어요.
소학교를 졸업한 게 학력의 전부지만
결국 가난한 농사일을 벗어나기 위해
총 네 차례나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철도공사판에서, 금화의 노동판에서
막노동을 하며 도시의 삶을 엿봤고,
한 번은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서울의 부기학원에 등록하러 갔다가
아버지에게 붙잡혀 다시 고향으로 끌려오기도 했어요.
아버지의 소 한 마리를 판 돈이,
처음으로 다른 인생을 향해 내디딘 걸음이었던 셈인거죠.
그리고 1933년, 열아홉 살의 마지막 가출 끝에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으로 자리를 잡으며 비로소 겨우 원하던 도시에 정착했습니다.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 그럼 이건 내 실패인가?
서울로 올라온 정주영 회장은
신당동의 한 쌀가게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남들보다 먼저 나와 가게를 쓸고,
자전거로 쌀을 배달하고,
엉망이던 장부까지 손수 정리했습니다.
그 성실함을 눈여겨본 주인은 결국 가게를 통째로 넘겼고,
1938년, 정주영 회장은 자기 이름으로 된
'경일상회'라는 쌀가게 사장이 됐어요.
성실함도 있었지만
이 첫 시작은 운이 좋았던거 같기도 해요.
서울에서 자기 가게를 가진 사람이 된거니까요.
하지만 불행히 이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1940년, 일제가 쌀 배급 통제를 시작하면서
그는 2년 만에 가게 문을 닫아야 했거든요.
어렵게 일으킨 첫 사업이
외부 환경으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진 거예요.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좌절하지 않고 곧바로
경영난에 처한 자동차 수리공장
'아도서비스'를 빚을 내어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그 공장도..
인수한 지 한 달도 안 돼 화재로 전부 타버렸습니다.
빛을 내서 산 공장이,
채 자리도 잡기 전에 잿더미가 되었죠.
그럼에도 또다시 빛을 내 새 공장을 열었지만,
1942년, 이번에는 일제의 기업정리령으로
결국 그 공장마저 강제로 빼앗겼습니다.
쌀가게, 첫 공장, 두 번째 공장까지.
연속된 실패를 겪었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여기서
무너졌지도 모르지만
정주영 회장은 이 시기를
관통하는 삶의 태도를 훗날 이런 말로 정리했습니다.
"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폐허 위에
다시 시작된 회사
광복 후 정주영 회장은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현대토건사를 세웠고
1950년 두 회사를 합쳐 현대건설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곧 6.25 전쟁이 터지면서
또 다시 세운 회사는 전쟁의 한복판에 놓였어요.
하지만 이 폐허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낙동강 고령교 복구공사,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 같은
전후 재건 공사를 하나씩 맡아내며,
현대건설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어요.
쌀가게, 공장, 공장을 잇달아 잃었었는데..
이번에는 나라 전체가 무너진 자리 위에서
굴하지 않고 회사를 다시 세운 거죠.
해보지도 않은 일에
안된다는 확신을 어떻게 하는가?
10여 년 뒤인 1984년,
서산 간척지 공사의 마지막 고비를 만났어요.
방조제의 마지막 270m 구간에서 초속 8m의 급류가 흐러,
기존 공법으로는 아무리 흙과 돌을 부어도 그대로 쓸려나갔죠.
전문가들도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던 순간,
정주영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폐유조선 한 척을 가라앉혀
그 급류 자체를 막아버리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아무도 해본 적 없는 방법이었는데..
다행히 이 방법은 실제로 통했어요.
공사비 약 290억 원을 아끼며 물막이에 성공했고,
이 사례는 훗날 '정주영 공법'이라는 이름으로
뉴스위크, 타임지에도 소개됐습니다.
주저하는 사람들 앞에서 습관처럼 했다는 말이
바로 이런 순간들에서 나온 말이었죠.
“이봐, 해봤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저는 오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정주영 회장이 이룬 결과가 아닌
해보지 않고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기업이란 현실이요, 행동함으로써 이루는 것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야 하며,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아가야 한다."
빌린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 세 번이나 다 잃어봤던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을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생각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가장 유명한 한마디가 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그래도 안 될 거 같나요?
하지만 "해봤냐"는 말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막상 내 상황에서 실행하는 건 다른 문제예요.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드는 분이라면
더욱 그럴 거예요.
그러니 정주영의 말을 빌려서
아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 "안 될 것 같다"는 그 일, 시도해보기는 했나요?
- 지금 내게 남은 것 중, 돈보다 오래가는 건 뭔가요?
- 길이 없다고 멈췄나요, 아니면 없는 길을 닦고 있나요?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상황이
조금은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소 한 마리 판 돈으로 1,001마리를 몰고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시작해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자동차까지 만든
정주영 회장은 1998년 소 500마리,
그리고 몇 달 뒤 5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습니다.
합쳐서 1,001마리.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한다는 뜻으로
한 마리를 더 했다고 해요.
열아홉 살, 아버지의 소 한 마리를 판
70원을 들고 고향을 뛰쳐나갔던 어린 소년이
팔십 노인이 되어 천 마리가 넘는 소 떼를 몰고
그 고향 땅을 향해 다시 걸어간 거죠.
소 한 마리로 시작한 인생이
소 천 마리로 매듭지어졌습니다.
누구나 하면 된다
소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고,
가진걸 모두 바친 세 번의 도전에도
모든걸 다 잃었던 정주영 회장은
그때마다 "해봤냐"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다시 다음 걸음을 뗐고 결국 현대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이게 정말 될까..?"
망설여지는 일이 있다면
되고 안 되고를 따지기 전에
오늘 그 일을 한번 시작해보세요.
이처럼 빛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오늘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인사이트가 숨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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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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