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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70살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26.10.07

 

‘저스트 킵 바잉’ 을 읽다가 한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책에서는 은퇴 후 우리가 걱정해야 할 문제가 재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하고, 사람들과 연결되고, 삶에 의미를 만들어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은퇴 후 3년이 지나자 지겨워 미칠 것 같았어요.
일은 돈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문장을 읽는데 자연스럽게 우리 아빠가 떠올랐습니다.

 

 

아빠에게 일은 오랫동안 ‘돈을 버는 수단’이었다

 

우리 아빠는 평생 고정적인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불안했고, 화도 많았습니다.

어릴 때는 그저 ‘우리 아빠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고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빠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보다는
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보다

‘이번 달에도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게 먼저였던 거죠.

 

그러니 아빠에게 일이란
나를 표현하는 것도, 성장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빠는 65살이 넘어 더 활기차졌습니다

 

우리 3자매가 모두 크고 나서였습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내가 무조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들자
아빠는 조금씩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였습니다.

아빠는 예전부터 시골에 내려가면 늘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나중에 김 반장이 될 거야.”

 

 

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제 오지랖은 정말 아빠에게서 온 것 같습니다.

 

동네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이것도 도와주고, 저것도 도와주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같이 해결하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건물 관리에 필요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전기를 비롯해 필요한 자격증을 하나씩 땄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하나를 따고 끝내는 게 아니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이것도 할 줄 알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는데?”

싶으면 또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또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아빠는 어느 순간 그곳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찾는 사람이 많아 너무 힘들지만, 정말 행복 해 보이셨습니다

 

예전보다 많은 돈을 벌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빠에게 처음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70살, 아빠는 은퇴했습니다

 

사실 제 마음 한편에는 늘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평생 열심히 살았지만
노후를 위해 많은 돈을 모아놓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조금 다른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가 투자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어느 순간부터 주식 투자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냥 조금씩 하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생각보다 꽤 본격적이었습니다.

 

하락장을 겪으면서도 공부를 계속했고,
나름의 원칙을 만들어가며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70살이 된 아빠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누군가가 보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 준비로 은퇴해도 돼?”

그런데 요즘 아빠를 보면
저는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합니다.

 

아빠는 지금 참 즐거워 보입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음껏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척 좋아합니다.

 

70살인데도 아빠에게서는 이상하게 ‘끝’이라는 느낌보다
‘이제 또 뭘 해볼까?’ 하는 시작의 느낌이 납니다.

 

 

돈보다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저스트 킵 바잉’ 으로 돌아가 봅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은퇴를 준비한다는 것이
단순히 ‘얼마가 있으면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를 계산하는 것만은 아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돈은 분명 중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선택할 수 있고,
돈이 있어야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도 생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돈을 벌지 않아도 나는 계속 배우고 싶은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싶은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있는가.

어쩌면 그것이 돈과 함께 준비해야 할
또 하나의 노후자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는 그걸 조금 늦게 찾았습니다.

60살이 넘어서야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시작했고,
70살이 되어서야 돈을 버는 것과 별개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희망을 봅니다.

사람은 몇 살이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아빠보다 조금 더 일찍
그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나는 돈을 모으는 동안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우리도 경제적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좋은 자산을 사고, 투자금을 모으고, 순자산 목표를 세웁니다.

 

그런데 언젠가 목표했던 돈을 모두 모았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다음 날 아침,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을까요?

 

저는 이 질문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를 하는 이유가
단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면
막상 그날이 왔을 때 우리는 또 다른 공허함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를 준비하는 지금부터
돈과 함께 나의 정체성도 쌓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살아 있다고 느끼는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벌지 않아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우리 아빠는 60살이 넘어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얼마를 모을 것 인가와 함께
그 돈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를.

 

어쩌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진짜 경제적 자유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14

찬스2
26.10.07 21:56

틴님 정말 따뜻한 글입니다 ㅎㅎ 저도 요즘 돈도 중요하지만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무형적인 가치에 대해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걷는
26.10.07 21:52

틴님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나눔글이네요! 하고싶은 일을 하시면서 계속해서 꿈을 찾아 노력하시는 아버님이 너무 멋지십니다!! 우리도 목표를 향해 바쁘게 나아가는 길에 우리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꼭 가지겠습니다~! 소중한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틴님!

김작심
26.10.07 21:59

아버님 너무 멋지세요..🤍 저의 은퇴도 꼭 고민해보겠습니다 ! 글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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