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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2] 독서후기 8-#3 죽음의 수용소에

26.08.31

<요약>

아우슈비츠. 생사가 오가는 극한의 공포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있다. 그 자들은 단순히 죽음의 문턱을 넘은 것이 아니라, 살아아 하는 ‘목적’,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의식주 같은 본능적이거나, 명예, 직위 등 겉으로 보여지는 목적은 아무 의미 없다. 그보다 보이진 않지만, 소중하게 느껴지는 무형의 가치들이 필요해보인다. 저자는 사랑, 책임이었다. 물론 순간순간 고통스러움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 깊이 간직해둔, 뜨거운 무형의 가치를 꿈 꾸며 부정적인 감정들을 이겨냈을 때, 그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심지어 행복해질 수 있다. 누군가는 특정한 삶을 갈구한다. 하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은, 나한테 달려있고 나한테 답이 있다. 시련, 고통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나에게 질문하고, 깊이 답을 하며 나에 대해 알게 되고 행복해질 기회를 가지게 된다. 살아가면서 이러한 답을 찾기란 시간을 내지 않으면 어렵다. 그러나 시간을 내서 스스로를 알아야 하고, 답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선명한 목표를 가진 의식적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인상깊은 구절>

[삶, 시련, 죽음. 그 어떤 것이든 모두 '목적'이 있다. 그러나 답은 본인에게 있다]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없다.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프랭클 박사는 다음과 같은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숭고하다]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아내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만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서야 깨달은 것인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고통스럽더라도 웃을 수 있다. 웃음으로써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려는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번 유추해 보자.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면의 자유,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쇼펜하우어가 ‘시련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던)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 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 혹은 완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진짜 원하는 나의 목표, 고통을 이길 수 있다]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앞에서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미래─ 그 자신의 미래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수감자를 치료할 기회가 있을 때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려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 즉 목표를 얘기해 주어야 한다. 슬프도다! 자기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우리가 삶에 기대하는 것.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시련은 더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과정]

시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백하게 밝혀지면서 우리는 수용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무시하거나 거짓 상상을 하거나 억지로 만들어 낸 낙관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으로 그것이 주는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됐다.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시련을 겪어 오면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은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의외로 그들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건강, 가족, 행복, 전문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은 모두 나중에 다시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느낀점]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저 스스로 이유를 찾기 위해 정리하고 질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어려웠었는데, 어쩌면 정해진 답을 나한테 끼워맞추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졌지, 나 자신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 어려웠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무언가에 대한 생각 정리를 해야되지만, 그 앞단에 제가 먼저 정리가 되는 것이 먼저고, 그 정리라는 것은 이쁜 포징지에 감싸야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소소한 나의 감정, 장점, 약점과 같은 것들이라는 것을. 

 

재미,의미,성장. 3가지가 있어야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이 3가지만 있으면 어느 순간 놓치게 됩니다. 이 3가지 상단에 ‘진짜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필요합니다.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빅터 프랭클님의 극한의 상황에서 떠올린 목표는 구체적입니다. 아마 이 사람 외에 그 어떤 누구도 이런 꿈을 꾸진 않았을 겁니다. 꿈이란, 사실적이고 구체적이고 개인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꿈은 그 반대입니다. 대부분 뜬구름 잡는 경우가 많고, 모호하고, 누구다 들어봤을 법한 내용일 확률이 높습니다. 진짜 나의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은 결국 생각을 안해봐서이고, 행동해보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면 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부자가 되는 것, 선생님이 되는 것. 사실 그 어떤 것도 이미 달성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혹은 지난 한 주를 살아오면서 느꼈던 행동들에 대해 나의 감정이 어땠고, 그 때 내가 좋아했던 것, 잘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점차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알고, 그렇다면 이걸 해볼까? 도전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사실 그동안 주어진 것들을 그저 해냈을 때, 성공했고 성취해냈습니다. 입시, 대학, 직장, 결혼 등 30년 동안 이렇게 살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보이는 것에 나를 끼워맞추는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우연히 재테크 공부를 했을 때도 늘어나는 실력과 돈을 보며 행복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벅차고 힘들었지만 어느 샌가 해내고 있는 저를 보며, 그와 동시에 행복해하는 저를 보며 ‘바쁘지만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도 너무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을 도달하기 위해 문득문득 현실의 벽 앞에 두려움이 떠오릅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렇게 두려움을 바라보지 않고, 다시 바쁜 일상에 올라탔을 때,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저를 덮칩니다. 그러다 슬럼프가 찾아옵니다. ‘나는 역시 안되는구나’ 그렇게 내가 자신 있어하는 부분에 도피를 하다, 자신 있어하는 부분도 수준이 떨어져 동반 하락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너나위님께서 칼럼에서 해주신 말씀들이 요새 마음에 계속 맴돕니다.

“두려움을 깨기 위해선 방법이 필요합니다. 용기, 자신감, 인내입니다.”

나는 어떤 때 행복한지, 나는 어떤 때 안녕한지, 나는 어떤 때 불행한지, 어떤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지, 나는 어떤 때 너무 지쳐있으니 잠시 쉬어야 하는지, 각각의 상황일 때 내가 나 스스로에게 내릴 수 있는 처방전은 무엇인지까지. 그걸 알아야 인내를 발휘할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아가야 할 목표만 불나방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생각해보겠습니다. 물론 그 생각 끝에 진짜 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 과정이 제게 이로운 과정임을 믿고, 계속해서 행동하고 정리하고 나아가겠습니다. 기다려주시고 격려하고 응원해주시는 쟈니 튜터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적용할점]

  • 매일 30분 목실감을 작성하며, 그 날 일과에 대한 나의 감정, 나란 사람에 대해 생각 정리하기.

 

 

[같이 논의하고 싶은 발제문]

지금까지 시련을 겪어 오면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은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의외로 그들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건강, 가족, 행복, 전문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은 모두 나중에 다시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Q. 그동안 투자 생활을 이어오면서 각자 힘든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힘든 순간들은 무엇이었고, 힘든 순간들을 극복하고나서 얻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또한, 앞으로 에이스 생활을 하면서 어떤 시련이 닥칠 것 같은지, 그 시련이 정말 힘든 시련일지,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일지 얻게 된 것을 기반으로 이야기 해봅시다.

댓글 1

징기스타
26.08.31 13:20

튜터님! 홧팅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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