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처럼 참석한 정년 퇴임식이었다.
늘 그렇듯 선배들의 한 마디가 이어졌지만, 이번엔 달랐다.
선뜻 축하할 수 없었다.
끝내는 박수마저 치기 어려웠다.
“정년 퇴임하는 선배님이라 함은 누구보다 열심히 30년, 40년 회사를 다니셨던 분들을 말하잖아요. 그런데 인생의 그 긴 시간을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퇴임식에서 밝은 표정을 보이지 않으셨어요. 퇴직 이후 삶이 불안정해서죠. 실제로 선배 중 한 분은 연단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우리 후배님들은 직장 다니며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 한 번 해보세요. 우리 후배님들은 미리 준비해서 나와 같지 않으면 좋겠네요. 나도 미리 준비할 걸 그랬어요…” 축하받고 나가야 하는 자리에 그 말씀 하시기 정말 쉽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매년마다 박수를 쳤던 자기 자신을 되돌아봤다는 그녀.
정장에 사원증 차고 대기업 출근하는 세련된 여성. 드라마에 나오는 커리어우먼을 꿈꿨었다. 은행, 금융권, 대기업 같은 곳에 취직하면 거기서 좋은 배우자도 만나겠다 싶었다. 열아홉, 바로 취직했다.
이후 인생은 그렸던 꿈결처럼 흘러갔다. 회사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 두 명의 자녀, 워킹맘으로의 하루하루.
그런 일상을 보내던 그녀는 문득 무서워졌다.
“나는 20년 후 저 자리에 서서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우리 애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이제 뭐 먹고 살까 고민하면 어떡하지?”
“내가 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퇴임식 직후 그녀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수많은 재테크 책을 마주했고 눈에 띄던 강렬한 빨간색 책에 마음이 동했다. 곧 <나는 부동산과 맞벌이한다>를 읽으며 귀가 솔깃해진 그녀. ‘이거라면 나도 해볼 만하겠는데?’
그렇게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 그녀의 집이 있는 전남 광주에서 서울까지의 4년을 오간 끝에… 순자산 10억 이상을 달성한 그녀.
말이 좋아 4년 후라고 짧게 끝나는 것이지, 사실 투자 시작 당시 첫째 아이는 9살, 둘째는 7살이었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시기였다. 어쩌면 지난하고 지난했을 그녀의 도전. 바쁜 워킹맘에서 서울과 전남 광주를 오가는 10년 차 투자자가 되기까지.
오늘은 두 아이의 엄마로도 10년차 실전투자자로도 탄탄한 길을 걷고 있는 코크드림의 이야기를 담았다.
취직을 굉장히 일찍 하셨네요.
“어렸을 때 돈이 없어서 가족이 해체된 경험이 있어요. 엄마와 저희 남매가 전부 헤어져 살았어요. 사춘기 시절, 각자 친적집에 맡겨져 동떨어져있던 상처가 컸죠. 돈에 대한 목마름이 타는 듯했고요. 친구들 쓰는 것 보면 부럽기는 한데 받아본 적도 가져본 적도 없는 물체가 저에게는 돈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취직하자마자 소비 욕구가 폭발했어요. 그때가 97년도라 월급도 현금으로 봉투에 넣어 받았는데요. 60만원 정도 되는 월급을 다 썼어요. 물론 첫 월급이니 엄마 내복 선물도 사드렸지만 나머지는 다 썼어요.“
처음에는 월급까지만 다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신용을 주고 다음 달, 다다음 달의 돈을 미리 쓸 수 있는 게 생겼다. 신용카드. 어릴 때는 없어서 못 썼는데, 이제는 미래의 돈까지 쓸 수 있다니… 야호! 그녀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 말이 있어요. 돈이 다리미다. 무슨 말이냐면, 여유있게 자란 애들이 구김살이 없는 이유가 돈이 다리미라 펴주었기 때문이란 거예요. 저는 유년시절 경제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존감이 낮았어요.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니 뒤늦게 그걸 펴보고 싶어서 백화점을 자주 갔죠. 이거 입어보세요, 예쁘네요., 라는 대접받는 느낌 아시나요? 월급 날이 돌아오기 전에도 돈이 없을 때도 갔어요. 오히려 지금은 돈이 있는데 잘 안가는데 말이죠…”
처음에는 할부만 썼다. 카드값이 밀리자 카드를 더 만들어 돌려 막았다. 그러다 그것도 어려워지자 리볼빙, 단기 대출을 사용했고 현금서비스도 받았다. 그녀는 그때만 해도 이자가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 나중에서야 쓴 것보다 이자가 더 나간단 사실을 깨달았지만 너무 늦었다. 급기야 회사까지 독촉 전화가 왔다.(아직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전 일이다.)
위기의식이 고개를 들었다.
‘나… 잘리면 어떡하지?’
정말 큰일 날 뻔 하셨네요. 그 많은 카드 빚은 어떻게 하셨나요?
“갚았죠. 어떻게 갚았냐고요? 1년 넘게 퇴근하고 식당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횟집, 감자탕집, 고기집… 밤 11시, 12시까지 주말까지요. 너무 힘들었지만 다행인 건 돈 쓸 시간도 없었어요. 놀러가질 못하니까요.”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당연히 혼자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속 썩일 때마다 “남편복이 없으면 자식복도 없다더라.” 라고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을 또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후회화 회환과 속상함… 그녀는 그때부터 이제 가난도 부도 스스로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재테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결혼하고 나서다. 남편이 ‘우리 이제 같이 잘 해보자’라고 하며 경제권을 맡겼기 때문이다. 혼자 쓸 때는 혼자만 감당하면 되었지만 이제 배우자가 한 달간 열심히 일한 몫까지 책임져야 하니 함부로 쓸 수 없었던 그녀.
저축을 어느 정도 했지만 한계가 있단 걸 깨달았다.
어떤 재테크를 가장 먼저 시작하셨나요?
“당시 유행했던 펀드요. 나름 분산투자라고 펀드를 한 번에 6~7개를 했어요. 결국 마이너스 나서 그만두고 주식으로 넘어갔어요. 마침 아는 지인이 스타트업 다녔는데, “여기 너만 알아라.” 하면서 알려주더라고요. 냉큼 천만원이나 투자했는데 상장폐지를 당했어요.(당시는 2000년대 후반, 천만원이 그래도 큰 돈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저축만 했어요. 난 재테크에 소질이 없다. 모으기만 하자! 라면서요.
남편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남편도 용돈으로 주식 했다가 잃었거든요. 결국 둘 다 돈 버는 게 쉬운 게 아니니 아껴쓰자는 주의로 살다가… 선배님들의 정년퇴임식을 마주했던 거죠.”
부동산 투자는 이후 그 정년퇴임식 때문에 결심하신 거군요.
“두 번의 출산을 하면서도 저는 딱 3개월씩만 쉬고 바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했어요. 왜냐하면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우리 집이 여유가 있었다면 아이를 1:1로 케어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까 아쉬워 하며 출근했죠. 현실은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애가 울든 어쩌든 일단 출근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지?’ 대게의 워킹맘들이 느끼는 것들을 저 또한 느끼면서도 꾸역꾸역 해나갔죠. 대안도 없었고요.“
“그런데 그 정년퇴임식이요. 사실 그 때 제가 느낀 걸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느꼈을 거예요. 그런데 과연 행동까지 옮긴 사사람은 몇이나 될지 보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실 그 전까지의 저도 그랬고요. 위기 의식을 느끼는 순간이 오는데 언젠가 하겠지, 언젠가 하겠지 하면서 계속 미루는 거 말이예요.
친구들 만나서도 우리 나중에 어떡하냐, 뭐 먹고 사냐, 그만두고 싶다… 노래를 부르면서 실제로 그만두지는 못하고요. 어느 순간 불평불만한 하고 있는 제 스스로가 싫어지더라고요. “왜 내가 바뀌진 않고 똑같은 말만 계속 하고 있지?” 분명 작년, 재작년에도 했던 말인데 이 말을 내년, 5년 뒤에도 할 것 같다는 미래가 뻔히 보였어요.”
덧붙여 행동으로 옮기냐 옮기지 않느냐의 한 끗 차이에는 그녀의 유년시절도 한 몫을 했다. 돈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걸 직접 겪었던 그 기억. ‘혹시 나이 먹고 다시 어렸을 때처럼 가난으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별안간 스쳐지나가는 두려움.
그녀는 그 때부터 달라졌다.
“저는 무언갈 혼자 꾸준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뭘 시작해도 흐지부지하던 스타일에 더 가까워요. 하지만 인생에서 꾸준히 한 게 딱 두 가지가 있어요. 학교, 직장이요. 모두 단체 활동입니다. 함께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인 거죠.
사실 집 근처에 강의 듣는 곳이 있거나 주변에 이미 재테크로 성공한 사람이 있었다면 괜찮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 주변에는 없었어요. 그게 제가 그 먼 전라남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다닌 이유예요.. 매주 기차를 타고요. 서울에 오면 강의도 듣고 나와 같이 부동산과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만나고 소통하고 공부하고 동료가 생기고 언제까지 과제하고 재테크 공부한다는 스케쥴이 생기거든요. 어떻게 보면 또다른 학교죠. 투자 학교요.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 있으려고 했어요. 광주에 돌아가면 또 38년 살아온 대로 자꾸 편해지려고 하니까요. 결국 스케쥴을 따라 움직이다보니 약 4년 후에 자산 성과를 냈고요.”
처음 투자할 때 종잣돈은 얼마나 가지고 계셨나요?
“저는 2천만원을 갖고 있었어요. 제가 가진 돈의 크기가 크지 않아서 공부와 종잣돈 모으기를 병행했어요. 지금 투자냐 공부냐를 고민하고 계시다면 가진 돈의 크기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보세요.”
요즘 많은 곳에서는 ‘1억원’이 투자를 해도된다의 기준처럼 보여지고 있다. 일단 1억부터 모아라, 라는 말도 자주 들린다. 하지만 그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그때 2천만원으로도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봤어요. 그래서 굳이 꼭 1억원을 모아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만약 초반의 제가 1억원까지 모으는 것에만 집중만 했다면 그때 투자도 할 수 없었고 기회도 잡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만약 지금 부동산 투자, 특히 아파트를 생각하고 계시다면 조금 낮춰 기준을 생각하셔도 좋아요. 5천만원 정도로요. 5천만원 되기 전까지는 공부와 돈 모으기 비율 중 돈 모으기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두는 거죠. 5천만원을 모으시면 공부에 더 우선순위를 두시고요. 만약 1억원을 모으셨다면 사실 절약은 몸에 배어있단 얘기라서요 어떻게 불릴지를 1순위로 두고 생각하시는 게 좋아요.”
요즘도 코크드림님 때처럼 그런 기회가 있을까요?
“지역적으로는 굉장히 양극화 현상을 일어나고 있어요. 수도권 안, 서울 안에서도요.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좋아하는 강남 3구 이런 곳은 당연히 가격이 많이 올랐고 이전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면서 신고가 경신한다는 뉴스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기회는 꼭 강남 3구가 아니더라도 서울 안에서 거주하기 괜찮은 곳들에 있어요. 물론 단지별 가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2021년도 폭등 때만큼 가격이 올라가지 않은 상태거든요. 오히려 이런 때가 내집마련이나 투자 기회를 잡기에 좋은 때죠. 지금 파셔야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갈아타기를 하거나 다른 사정이 있으신 분들이요. 그래서 그런 지역들에서 여유롭게 가격 협상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이야기는 제가 지금도 꾸준히 임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답니다. 사실 어제도 서울 임장을 다녀왔어요.”
투자를 하고 싶어도 종잣돈 모을 때 자녀 교육비가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사교육은 아예 안 시킬 수 없어요. 특히 자녀와 관련된 비용이고, ‘내가 서포트를 하지 못해서 우리 아이 재능이 꽃 피우지 못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사교육비는 부부의 노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아셔야해요.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중, 고등학교 올라갈 수록 비용 단위도 커지고 한 과목만 다니기도 쉽지 않거든요. 자녀가 두 명이라면 두 배로 들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재테크를 해야 현명한 걸지요.
“현명한 재테크는 ‘우리집 상태를 아는 것’에서 출발해요. 사실 가정의 재정상태는 소득 수준, 아이 나이대에 따라 다 다르거든요. 평균이란 게 있어도 나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건 평균 생활비 보다 내가 정확히 우리집 상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노트북을 돌려 실제 사용하고 있는 재무상태표 파일을 살짝 보여주었다. 남편에게도 매달 공유하고 재정 상황에 대해 논의한다는 ‘우리집 재무상태표’. 전달 대비 순자산, 자산, 부채 등이 얼마나 늘었는지 구분되어 있고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집안의 재테크는 꼭 부부가 공유해야 한 사람이 전담했을 때와 달리 가정의 위험이 덜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실제로 그녀는 매달 재무상태표를 새로고침하여 집안 전체 재테크 상황을 남편과 공유한다.
( 자료 출처 👉워킹맘에서 부자 엄마로! 우리 가족의 삶을 바꿔줄 엄마의 재테크 공부 )
“다이어트를 하려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내 몸무게잖아요. 체지방, 근육량을 알고 식이요법을 더 강하게 할지 유산소냐 웨이트냐 어떤 운동을 더 많이 할지 결정하고요. 재테크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집안의 재테크를 제대로 하려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순자산’ 항목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너희 집 순자산이 얼마인지 알아?” 물어보면 모르세요.
순자산은 총 자산에서 총 대출을 뺀 순수 내 돈인데요. 내가 진짜 가진 돈이 얼마이고, 재테크를 할 때 현금화 할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유동성)이 알아야 해서 중요해요. 왜냐하면 그 돈에 따라 어떤 투자를 언제 어떻게 할지, 향후 투자 로드맵까지 전부 그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아주 간단한 예를 들면, 대출이 여러 개일 때 무엇부터 상환할지 결정할 수 있어요.”
재테크에서 순자산이 중요하군요. 혹시 교육비 기준도 있을까요.
“저는 월소득에 10~15% 정도만 교육비로 사용하시길 권장해요.
세후 소득이 맞벌이 800만원이라면 80~120만원 정도만 아이 교육비로 사용하는 거죠. 자녀가 둘이면 좀 어려우실 수도 있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소득 안에서 적절하게 잘 쓴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도 내켜하지 않는다면 돈을 모아뒀다가 나중에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게 있으면 그 때 이걸 배워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가정의 교육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절대적 소득이 같다면 교육비를 많이 들이는 만큼 노후 준비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녀도 처음에는 아이를 영어, 수학 학원에 보내기도 했다. 맞벌이는 보육 측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영 좋아하지 않았고 그 돈이 곧 아까워졌다. 농담처럼 아이에게 넌 학원 전기세 담당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학원보다는 주말에 도서관을 가고 책을 읽고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자녀들과 함께 책을 읽는 것 말고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경제 교육이요. 전 경제 교육이 아이에게 필수라고 생각해요.
저희 엄마가 열심히 일해 저를 키우셨어요.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당신께서도 알지 못했고 때문에 저에게 알려주실 수도 없었어요. 그렇다보니 저도 저축은 하지만 “집은 내 인생에 없는 거지 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소름이 돋더라고요. “우리 아이도 나랑 같이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처럼 미리 포기하면…?”
그래서 내가 이걸 알아야겠다. 나는 비록 못 배웠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마음 먹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상 생활에서 자주 이야기하려고 노력했어요.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으니 용어도 생소하지만 자꾸 듣다보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했고요.”
아이들 경제 교육을 결심하면서 거실 전부를 차지하고 있던 어린이 전집은 모조리 치웠다. 대신 엄마의 책으로 가득 채웠다. 엄마가, 내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였다. 책장은 아직도 채워지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이 비록 눈과 손은 게임을 하더라도 경제 이야기를 듣게 했다. 월급을 모아 큰 돈이 생기면 차를 사야할까 집을 사야할까? 가벼운 퀴즈를 던지고 매번 설명해줬다. 공모주도 공부했다. 아이들 이름으로 증권 계좌, 카드, 통장을 만들어 수익을 내고 보여줬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관심 없어 했어요. 그런데 보니까 자기들 이름이 써있고 용돈에 포함되니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특히 아들이 ‘엄마, 이런 게 있어?'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읽을 만한 경제나 재테크 책 추천도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자랑일진 몰라도.. 그 전까지는 아이가 원치 않아 학원도 안 보내고 공부도 안 했는데 이런 계기로 목표가 생겨 지금은 열심히 공부 중이에요. 직접 국내 주식, 해외 주식도 투자하고요. 스스로 투자 기준도 노트에 쓰면서 돈은 이렇게 불려갈 수도 있고 마이너스가 날 수도 있구나, 배워가더라고요.”
중학교 3학년, 공모주 수익을 받아보고 눈을 뜬 그녀의 아들은 현재 고3. 그동안 하지 않아 밀렸던 공부에 매진 중이다. 그녀는 아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교육을 받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성인이 된 이후 무기가 하나 더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부모라면, 엄마라면 자녀에게 무기 하나 더 쥐어주고 싶지 않을까요. 재테크는 공부 잘한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 못한다고 못하는 그런 것도 아니거든요.”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가, 엄마가 알아야만 했다. 먼저 공부하고 알아야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는 무기, 경제 교육.
자녀에게 선택할 수 있는 무기가 하나 더 생기는 거군요.
“맞아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재테크든 뭐든 엄마가 별도의 시간을 내서 무언가 할 때 결국 육아 때문에 포기해요. 저도 투자를 하며 무너진 적이 많았고요.
수도권에서 임장 중이었는데 12살인 아이가 학교에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정말… 하필 차표도 없었어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생각도 했죠. 죄책감도 커지고요.”
“하지만 우리가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는 없어요.
실제로 부모에게는 5살, 7살… 아이의 모든 순간 순간이 소중해요. 그 시간들이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우리들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걸 항상 미안해하죠.
그런데 사실 정말로 미안해할 것은 노후준비가 되지 않아 미래의 아이에게 짐이 될 내가 아닐까요?
저는 우리 아이가 커서 ‘부모님 더 나이 드시면 어떡하지. 아프시면 어떡하지.’ 고민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저 아이가 살고 싶은 길을 집중해서 걸어갈 수 있도록.
그 길에 내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비록 모든 순간을 아이와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노후만큼은 아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그 준비 기간이 엄청나게 10년, 20년 길지도 않았고요. 지금은 저도 아이들과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특히 그녀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3년 전 퇴직했기 때문이다. 허리디스크 2개가 터졌다. 질병 휴직을 써야할 정도로 아팠고, 그녀는 퇴직을 선택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너무 아프고 휴직을 해야한다면…
당장 무슨 생각이 떠오르세요?
제가 아팠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다행이다, 나는 ‘이제 쉬어도 된다’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였어요.
안도감이었죠.
몸 아픈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소득이 끊긴다는 공포까지 같이 겪지 않아도 되어서, 내가 “여기까지만 일하자.”라고 선택할 수 있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될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열심히 살아왔으니 불운이 오지 않을 거란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어요. 나에게도, 나의 아이에게도 그런 일은 없으면 싶지만 보장할 수 없어요.
전 제 아이들도 한 손에 제가 준 무기를 들고, 오롯이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해나아가길 바라요.
나의 아이가 미래에 대한 불안 대신, 꿈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아마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같은 마음이라면,
저처럼 고민했던 엄마들에게,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엄마의 재테크, 함께 시작해봐요.”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를 선물하고 싶다면…”
미루지 말고 드디어 시작해야 합니다.
목돈마련부터 아이 경제교육까지
경제적 자유를 위한 재테크 노하우.
👉우리 가족의 삶을 바꿔줄 엄마의 재테크 공부 시작하기
댓글
엄마 생각난다... 🥲아직 결혼도 안했지만 조카들에게 좋은 이모가 되어주어야겠어요.ㅎㅎ...
🤍 큰 울림과 응원을 주는 코크드림님의 재테크 방법 세세히 공유주셔서 감사합니다 🤍
크.. 2천만원으로 투자해서 은퇴까지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