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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고침을 눌러도 값은 안 바뀐다

3시간 전

호가창을 하루에 몇 번이나 새로고침 하는지, 세어본 적이 없다. 세면 무서울 것 같아 안 센다.

눈 뜨면 확인하고, 출근길에 확인하고, 일하다 문득 불안해 확인하고,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본다. 

실거래가가 떴나, 호가 하나 빠졌나, 급매가 나왔나. 

새로고침을 누르면 잠깐 마음이 놓이고, 놓이면 곧 또 손이 간다. 

아까 그 값, 아직 그대론가. 그새 뭐 하나 바뀌지 않았나.

대개는 안 바뀐다. 시장은 내 새로고침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누른다. 생각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한동안 나는 이걸 성실이라고 생각했다. 

남들 쉴 때도 시장을 들여다보는 부지런한 사람.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알았다. 나는 정보를 얻으려고 보는 게 아니었다. 그냥 불안해서 보고 있었다. 

새로 알게 되는 건 거의 없는데 손가락은 계속 새로고침을 누른다. 

그건 조사가 아니라 습관이고, 성실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문제는, 불안해서 자꾸 열어보는 그 행위가 정보만 확인하고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살 때 이미 기준을 정해둔다. 

이 값이면 산다, 이건 비싸니 안 산다, 여기까지 오면 판다. 냉정할 때 그어둔 선이다. 

그런데 선을 그어두고도, 나는 매일 그 결정을 다시 연다. 

새로고침을 누르듯, 이미 내린 결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꺼내 든다.

 

그러면 꼭 이런 일이 벌어진다.

값이 오르면 나는 '더 오를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살 때는 안 보이던 호재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값이 내리면 이번엔 '내가 틀렸을 이유'를 찾는다. 

살 때는 별것 아니던 악재가 갑자기 커 보인다. 

 

분명 같은 물건, 같은 난데, 값이 움직일 때마다 내 논리가 그 뒤를 졸졸 따라 움직인다.

 

이상하지 않나. 근거를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나는 결정을 먼저 내려놓고 근거를 주워 담고 있었다. 

오르면 더 갖고 싶고 내리면 도망가고 싶은 그 마음이 늘 먼저다. 

논리는 그 마음에 옷을 입혀주는 일을 할 뿐이었다.

 

정말 무서운 건, 그 순간의 나는 이걸 전혀 몰랐다는 거다. 

나는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믿었다. 새 근거를 찾아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검토가 아니었다. 이미 정해둔 답에 어울리는 재료만 골라 담은 거였다.

 

기준을 안 지킨 거라면 차라리 낫다. 안 지킨 건 나중에 반성이라도 한다. 

그런데 나는 기준을 지키는 얼굴로 기준을 허물고 있었다. 검토라는 이름을 붙여서, 성실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게 제일 위험하다. 죄책감조차 안 드니까.

 

새로고침을 눌러도 값은 안 바뀐다. 바뀌는 건 그 값을 보는 내 마음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불안하고 조금 더 욕심나서, 그만큼 더 흔들린 채로 같은 화면을 본다.

화면은 그대로인데 판단하는 사람이 매일 달라져 있으니, 같은 기준이 지켜질 리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덜 보기로 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 같은 사람한테는 이게 제일 어렵다. 

한 번 정한 건 다시 안 여는 것. 값이 궁금해 손이 가면, 대신 살 때 적어둔 기준을 다시 읽는다. 

화면 속 값이 아니라, 냉정하던 시절의 내가 남긴 문장을 본다. 

진짜로 새 정보가 생겼을 때만 결정을 다시 열고, 그냥 마음이 흔들린 거면 창을 닫는다. 결국 이 둘을 구분하는 게 전부였다.

 

아직 잘 안 된다. 오늘도 나는 몇 번이나 새로고침을 눌렀다. 

이 성격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거다. 

다만 이제는 안다. 자꾸 들여다보는 게 나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흔든다는 걸. 

지켜야 할 건 화면 속 값이 아니라, 그 값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세운 기준이라는 걸.

 

그걸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가끔은 그냥 화면을 닫아버리는 거더라.

 


댓글

러버블리v
3시간 전N

내가 자산을 선택했을때의 기준을 기록해놓고 흔들릴때 내가 자산을 살때 정했던 기준을 보고 감정이 아닌 근거로만 판단하면서 내가 정해놓은 기준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씨허씨
2시간 전N

가격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기준에 따라 선택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메아쿨파
2시간 전N

성실이 아니라 불안의 새로고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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