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
강력히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남들은 이미 출근길부터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월요일을
나는 서초구 임장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인 새벽 첫 기차에 몸을 싣고 도착한 서울.
그리고 본격적으로 서초구의 땅을 밟아간 약 6시간.
여전히 나를 사로잡는 건 대한민국의 넘버원 입지와 넘버원 아파트들보다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월요일 아침이라서였을까.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과거에는 부촌에 사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겠거니 싶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실제 부촌이라 불리는 여러 지역들을 임장하며 보고 느낀 건 의외로 모두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흔히 ‘여유가 넘친다’라는 표현을 쓴다면, 그 말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비싼 곳에서 살아서 여유가 넘치는 것인지.
여유가 있어서 비싼 곳에 살고 있는 것인지.
뭐가 먼저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침 등굣길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단지 바로 맞은편 초등학교로 향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아이들의 표정과 복장도,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오히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더욱 자극하기에 충분한 풍경이었다.
‘우리 애들이랑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아이들이 이곳에 살면서 이곳의 학군과 환경, 그리고 커뮤니티를 누리고 있구나.’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부모들이 이곳에 살면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살아가고 있구나.’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우리나라 전체 아이들 가운데 몇 퍼센트쯤 될까.’
‘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출발점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걷다 보면 자연스레 주먹 또한 꽉 쥐게 된다.
지금 당장은 우리 아이들이 이곳의 아이들과 같은 출발점에 있을 순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서는 나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혹여 내 세대에서 우리 아이들이 온전한 수혜를 받지 못한다면, 내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는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줄 수 있는 할아버지가 꼭 되고 싶다.
그 다짐 하나만으로도 발걸음은 다시 빨라졌다.
오후가 되어 방배동에 도착했다.
때마침 곧 입주를 앞둔 디에이치방배 앞에 도착했다.
원래 임장 루트대로라면 단지 중간을 가로질러 가야 했는데, 이날이 입주 전 사전점검 날이었는지 보안요원들이 입구에서 입주민들의 휴대폰을 확인한 뒤 입장시키고 있었다.
결국 단지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채 아파트 주변을 둘러보며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역시나 이곳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과거의 나였다면, “비싼 집이라서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입주민 확인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들어가 보지도 못하게 하네.“라며 툴툴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금씩 변한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국평 기준 30억이 훌쩍 넘는 이곳에 실거주하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했고, 또 운을 마주하기 위해 걸어왔을까.’
입주민 인증을 하고 들어가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보며 또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윗세대부터 이어져 온 노력의 결실을 쌓아가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세대에서 처음으로 물줄기를 틀기 위해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온 사람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삶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농도깊은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지금의 나부터가 시작이 되어야 한다.
내가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내 자녀들은 당당히 입주민 인증을 하며 들어갈 수 있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길
그 발판이 내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최근 한 연예인이 디에이치방배 청약에 당첨되면서 현금 부자들의 특혜라는 비난 섞인 말들이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과거의 나 또한 거기에 쉽게 동조했을 것이다.
내 삶을 합리화했을 것이고, 저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빴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들이 어떤 출발점에서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결과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을 농도깊게 쌓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또한 2023년부터 월부에서 몰입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2024년에 서울 투자를 위해 자산을 재배치할 생각을 했겠는가.
그리고 그 몰입을 이어가지 못했다면 2023년에 투자한 물건을 2025년에 익절하고 갈아타기할 수 있었겠는가.
돌이켜 보면 그 과정에는 분명 노력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운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노력했고, 그 위에 운이 더해졌다.
그 두 번의 선택이 불과 4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많이 바꾸어 놓았음을 직접 보고 있기에
앞으로도 몰입의 시간과 노력의 시간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피부로 느끼게 된다.
언젠가 누군가 우리 가족을 보며
“저 집은 참 여유가 있어 보인다.” 라고 말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 여유가 돈이 많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쌓아온 시간과 선택들이
우리 가족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여유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농도 깊은 시간을 쌓는다.
언제 올지 모를 운을 마주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남겨줄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