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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마음 I 밥말생🍴

26.05.21 (수정됨)

 

 

 

🍴밥말생 #10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마음

※ 구내식당, 식판 위에서 태어난 논픽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점심에 앞서 오전 출장을 다녀왔다

 

컨퍼런스장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사람들은 노트북을 펼쳐두고 발표 자료를 따라가고 있었다

앞쪽 스크린에는 영어로 된 제목이 떠 있었고 잠시 뒤 한 연사분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분은 영어로 발표를 시작했다

첫 문장이 나왔을 때, 발음이 아주 유창한 편은 아니었고

억양이 어색하게 들리는 순간도 있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슬쩍 쳐다봤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슬라이드를 넘기고,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다음 문장을 이어갔다

손에 쥔 리모컨을 꼭 잡은 채로 자신이 준비해온 이야기를 끝까지 전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 시작 전부터 물을 세 모금쯤 마셨을 것이다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괜히 한 모금 더 마시고

 

첫 문장을 말하기도 전에 입술이 파래졌을 것 같다

외워둔 문장도 순식간에 날아갔을지 모른다

 

 

슈퍼 프레젠터가 되어보자: 발표 잘하는 법,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 PPSS < 기사본문 - ㅍㅍㅅㅅ PPSS

 

 

🍴

 

회사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구내 식당답게 국 하나, 반찬 몇 가지,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샐러드가 있었던 것 같다

참깨드레싱은 늘 부족한 그런 샐러드..

 

다들 오전 일정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 동료분이 문득 컨퍼런스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그분 발음 진짜 이상하지 않았어요?…

저라면 창피해서 못나갈 것 같아요”

 

악의가 있는 말은 아니었다
점심시간에는 원래 그런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떠다닌다

 

그런데 나는 맞장구를 칠 수가 없었다

왜 하필 그 순간 그분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머릿속엔 한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과연 그 자리에 섰다면 잘했을까?"

 

…

 

아니다, 분명 더 못했을 것이다

 

 

발표 전날부터 발표 잘하는 법을 검색하다가

어느 순간 컨퍼런스 당일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법 같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을지 모른다

 

무대에 올라갔다 해도 첫 문장부터 목소리가 떨렸을 것이다

리모컨을 잘못 눌러 슬라이드가 갑자기 앞으로 가버리고

다시 돌아오려다가 더 당황했을 수도 있다

 

그런 내가 누군가의 서툴음을 가볍게 웃을 수 있을까

 

치매병명개정] 병도 힘든데 사회적 손가락질까지 견뎌야 하나 < 복지건강 < 기사본문 - 여성경제신문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어떤 양상을 취할지도 통제하지 못하지요. 다만 어떤 생각은 더 오래 품으며 고취할 수 있고, 어떤 생각에는 최대한 작은 공간만을 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는 삶에서 존엄은 어디에 있을까요? 자유는 또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은 대부분 의도치 않게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이 아닙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

 

점심시간의 대화는 금방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오후 회의 자료를 누가 챙길지, 이번 주 일정이 왜 이렇게 촘촘한지

샐러드 드레싱은 왜 늘 부족한지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러다 예전의 못난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한때는 회사에서 내가 꽤 잘난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프로젝트가 하나 생기면 그냥 맡은 일만 하지 못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자료를 더 찾고

회의록을 다시 읽고, 과거 오래된 파일까지 열어봤다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으면 어느 순간 확신이 생겼다

 

"이 일은 내가 제일 많이 봤다
그러니까 내가 맞다"

 

누군가 다른 의견을 내면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판단이 끝나 있었다

 

“아직 맥락을 잘 모르시는구나”

 

참 조용한 오만이었다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내 생각이 정답이 된다고 믿었다

오래 고민했다는 사실이 근거가 된다고 착각했다

 

 

6.4만개의 정답 로열티 프리 이미지 및 스톡 사진 | Shutterstock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려는 의도로 듣지 않는다. 그들은 대답하려는 의도로 듣는다.
누군가는 상대의 마음을 진심으로 따라가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말을 끼워 넣을 틈만 노린다.

전자의 귀는 상대를 향해 열려 있고 후자의 귀는 오직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신호등을 향해 있다. 
대답할 기회만 엿보며 듣는 이에게 상대의 말은 단지 반박을 위한 재료일 뿐이다. 

이런 대화에서 이해는 사라지고, 순서만 바뀐 두개의 독백이 공허하게 교차한다. 
반면 이해하려는 태도는 말의 속도보다 그 이면에 머무는 의미의 무게를 살핀다.
그 순간 대화는 사람의 영혼이 교감하는 품격 있는 조우로 진화한다.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 - 신영준/고영성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틀린다

 

내가 놓친 것을 동료가 보고 있을 때가 있었고

나는 별일 아니라고 넘긴 지점이 제일 중요한 문제일 때도 있었다

반대로 내가 확신했던 게 시간이 지나보니 틀린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틀리는 일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이라서
긴장해서
바빠서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잘 안 돼서

다른 사람에게도 사정을 조금 붙여보고 싶다

 

무엇보다 부족함은 대개 시도한 사람에게서 보인다

 

무대에 서지 않으면 발음은 들키지 않는다

의견을 내지 않으면 틀릴 일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설픔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서툶은 부족함이라기보다 증거에 가깝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건 당신은 결국 해낼 사람이라는 증거 

슬럼프가 왔다는 건 열정을 쏟아냈다는 증거 

도전하기 두렵단 건 용기를 냈었다는 증거 

긴장된다는 건 진심이라는 증거 

좌절 했다는 건 간절했다는 증거 

지쳤다는 건 노력했다는 증거 

실패했다는 건 도전했다는 증거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 김상현

 

물론 모든 서툶을 그냥 넘기자는 말은 전혀 아니다
고쳐야 할 것은 서로 자연스럽게 피드백을 주고
더 나아져야 할 부분은 분명히 짚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도 너도 나도 틀릴 수 있다는 마음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날 밥은 조금 늦게 먹었다

나는 서툰 시도 옆에서 응원을 건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나도 또 틀릴 테니까

아마 그때도 꽤 자신 있게 틀릴 테니까

 

 


스리링's 추천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 다산초당 - 예스24

 

🍙1탄:🍴#1 "실장님은 내가 여러 번 결혼한다고 생각했다" 

🍙2탄:🍴#2 사건은 없었고 해석만 있었다

🍙3탄:🍴#3 “워런 버핏에게 배운 -80%의 교훈”

🍙4탄:🍴#4 “그 말… 굳이 했어야 했나? (feat. 인간관계론)”

🍙5탄:🍴#5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사는게 힘든 당신에게

🍙6탄:🍴#6 돈이 몰려오는 바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나요? 

🍙7탄:🍴#7 행복은 미루고 성취만 쫓고 있진 않나요?

🍙8탄:🍴 #8 후회를 후회로 남기지 않으려면 

🍙9탄: #9 오늘 뭘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 잘하고 있는 걸까? I 밥말생🍴 

 

댓글 9

화채
26.05.21 18:37

제 주변에도 대답하려는 의도로 듣는 사람들이 많아 피건합니다 ㅜㅜ 공감가는 글 감사합니다!!

돈죠앙
26.05.21 18:48

밥말생 이야기 감사합니다❤️

꿈꾸는사피엔스
26.05.21 18:58

글 왤케 잘쓰셔요 링장님ㅎㅎ 쭉쭉 읽히네요 밥말생너무재밌어요. 추천책도 담아보겠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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