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투명 매니큐어 칠하셨어요?”
“아이고.. 투명 메니큐어도 안되나요?”
“수술 전에는 투명 매니큐어도 안돼요~ 제가 또 기가 막히게 잘 지웁니다. 지워드릴 테니 퇴원하시면 또 예쁘게 바르세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내 옆에 대기하던 분의 대화가 들렸다.
수술실 안이라 공기가 차가웠지만 의료진의 말씀에는 따스함이 있다.
나는 지금 수술실 안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아침부터 입원 수속을 하면서 여러 명의 의료진을 만났다.
그들에게 나는 수많은 환자 중 에서 그저 ‘환자 1’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수술 전이라 멀쩡하게 걸을 수 있는데도 휠체어에 태워 이동시켜주고 행동 하나하나에 배려가 느껴졌다.
수술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다 보니 문득 수술 안내사항들이 떠올랐다.
〈수술 안내사항〉
- 전날 22시부터 금식하기. (물도 X)
- 목걸이, 반지, 팔찌, 귀걸이 등 귀금속은 모두 빼고 오기.
- 손톱과 발톱의 매니큐어는 지우고 오기.
등등 여러 안내 사항이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평소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했다.
결혼하면서 받았던 샤넬 목걸이를 벗었던 오늘 아침이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비싸게 주고 산 귀금속도 할 수 없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바른 매니큐어도 지워야 한다.
수술실에서는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결국 보여지는 건 정말 별거 아니구나.’

P28. 저소비 생활은 돈의 흐름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짊어진 억지 노력의 짐을 점점 내려놓는 작업이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만족하는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내 순서 바로 앞에서 큰 수술이 진행되고 있어서 대기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생각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만약 지금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면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돈일까.
비싸게 산 물건들일까.
꾸민다고 꾸민 외모일까.
수술실에 가지고 올 수 없었던 것처럼 아마 마지막 순간 나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누구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은 보여지는 나를 위해 소비하기도 했다.
더 예쁜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남들보다 부족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꼭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도 나를 꾸미는 데 사용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물건 몇 개가 아니라,
‘이렇게 보여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씌워왔던 마음의 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130 바꾸고 싶다는 기분은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거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에너지도 되기 때문에 중요한 면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생각하지 않고 쇼핑으로 발산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를 바꾸고 싶을 때마다
새로운 물건을 사고, 더 예뻐 보이려고 하고,
무언가를 더 채우려고 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내가 왜 살아가는지 알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내가 배우고 가진 것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물건으로 나를 채우는 대신, 진짜 나를 채워가고 싶다고 느낀다.
매니큐어는 퇴원하면 다시 바를 수 있고 귀걸이도, 반지도 다시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다시 꾸밀 수 없다.
오늘 수술실에서 같이 대기하던 환자분에게서 지워진 것은 고작 투명 매니큐어 였지만,
내 마음에는 질문이 선명하게 남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앞으로는 보여지는 나를 예쁘게 만드는 일만큼
보이지 않는 나를 잘 살아내는 일에도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
언젠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많이 가졌던 사람’보다
‘겉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고
그것에 내 돈과 시간과 마음을 쓰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는 삶의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수술을 하고 나니 앉을 수가 없어 종일 누워 있었다.
온몸이 쑤시고 여기저기 베기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수술실에서 문득 생각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삶은 보여지는 나를 꾸미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나를 더 잘 가꾸며 살아가겠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무통주사 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