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말생 #11
나이 먹고 꿈꾸면 좀 이상한가요?
※ 구내식당, 식판 위에서 태어난 논픽션 이야기입니다
오늘 점심은 제육볶음이었다
구내식당 제육은 이상하게 늘 비슷한 맛인데, 이상하게 늘 먹게 된다.
너무 맵지도 않고, 그렇다고 엄청 맛있지도 않은데 밥이랑 비비면 또 한 그릇은 뚝딱이다
이부장은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요즘 나 이상한 생각한다?”
박과장이 숟가락을 들다 말고 물었다.
“어떤 생각이요?”
“뭘 좀 배워보고 싶어”
“…뭔데요 부장님?”
“그건 말 못해, 말하면 너무 거창해질 것 같아서”
옆자리 김주임이 웃었다.
“에이, 뭔데요. 부장님답지 않게 왜 숨기세요”
이부장은 제육 한 점을 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보더니 말했다.
“아니, 그냥… 이 나이에 뭘 새로 한다고 하면 좀 웃기지 않나 싶어서”
박과장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요즘은 다들 뭐 새로 시작하잖아요”
“그건 남 얘기니까. 막상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좀 그래.
내가 나를 봐도 좀 민망해, 꿈 같은 단어 쓰는 거”
이부장은 말해놓고 자기가 먼저 웃었다.
“나이 먹고 꿈이라니, 좀 주책 같잖아”
그 말을 하는데 식탁 위가 잠깐 조용해졌다.
🍴
주책
우리는 언제부터 꿈꾸는 걸 주책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어릴 때는 꿈을 참 쉽게 말했다.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도 적었다.
선생님, 작가, 의사, 과학자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꿈이라는 말은 점점 낯간지러워진다.
하고 싶다는 말보다 해야 한다는 말이 편하고
설렌다는 말보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이 더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괜히 기대했다가 안 되면 창피할까봐 시작도 전에 먼저 접는다
김주임은 국을 한 숟가락 떠먹고는 말했다.
“근데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어릴 때는 꿈 말하라고 그렇게 시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꿈 말하면 철없다고 하잖아요”
이부장이 웃었다.
“그러니까. 쉰 넘어서 꿈 있다고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져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는 느낌?”
주임이 다시 물었다.
“실장님은 그게 겁나는 거예요?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이부장읔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것도 있고. 사실은 내가 나를 그렇게 볼까 봐”

“부장님이 부장님을요?”
“응. 내가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하거든
야, 이제 와서 뭘 그냥 하던 거나 잘해 괜히 마음만 들뜨지 말고”
남들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먼저 가장 차가운 말을 한다.
늦었어
안 될 거야
괜히 시작했다가 우스워져
지금 네 나이에 그게 말이 돼?
가끔은 세상이 나를 막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제일 먼저 막고 있는 것 같다.
🍴
이부장은 국을 뜨면서 며칠 전 읽었던 책 이야기를 꺼냈다.
시간이라는 제약은 육신의 노쇠를 결정할뿐 영혼의 지평까지 가둘 수는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늙는 순간은 가슴 속 갈망이 사그라져 더 이상 내일을 기대하지 않게 될 때다.
꿈을 향해 내딛는 걸음에 너무 늦은 계절이란 없다.
오히려 나이들어 되찾은 꿈은 조급한 욕망이 아닌, 오래 자신을 바라본 끝에 도달한 진실에 가깝다.
인생은 마지막까지 미완성으로 남는 예술 작품과 같다.
남겨진 시간의 길이를 가늠하기보다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태도가 삶의 밀도를 결정한다.
죽어가는 시간을 견디는 차원을 넘어 살아있는 시간을 창조하는 자에게
물리적 나이는 당장 삶의 족쇄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기에 절대 늦은 때란 없다. -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 1P

꿈을 향해 내딛는 걸음에 너무 늦은 계절이란 없다
이부장은 이 문장을 필사를 했다고 했다.
몸이 늙는 건 어쩔 수 없다. 예전처럼 밤새워도 멀쩡하지 않고
회복도 느리고, 뭔가 새로 배우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어제 먹은 야식도 다음 날 속에 그대로 남아 부대끼곤 한다
그런데 마음까지 꼭 같이 늙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는 일이다
내일이 오늘과 다르기를 바라지 않는 것
되고 싶은 내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도 “됐어” 하고 눌러버리는 것
그게 진짜 늙는 건지도 모른다.
이부장은 말을 하다 말고 웃었다.
“나 왜 갑자기 밥 먹다가 인생 얘기하냐”
과장이 바로 말했다.
“밥말생이네요”
“뭐?”
“밥 먹다 말고 하는 생각”

김대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 오늘 제목 나왔네요.
나이 먹고 꿈꾸면 좀 이상한가요?”
이부장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
🍴
나이 먹고 꿈꾸면 좀 이상한가요?
아마 이부장은 이 질문을 남들에게 묻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었을 것이다.
나 아직 시작해도 돼?
나 아직 기대해도 돼?
나 아직 뭘 해보고 싶다고 말해도 돼?
그 마음을 꿈이라고 부르기 민망해서 괜히
늦었다고 말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늦었다고 말하면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아도 된다
실패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우리는 늦었다는 말을 현실적인 표현으로 쓰지만
사실은 두려움을 숨기는 말로 쓸 때가 많다.
이부장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근데 계속 그렇게 살면 진짜 늦어질 것 같아
“마음이 아예 안 움직일 때 그땐 진짜 늦은 거겠지”
인생은 마지막까지 미완성이라고 한다.
완성된 작품처럼 딱 끝나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조금씩 덧칠하고, 고치고,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만 재고 있으면 자꾸 겁이 난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그런데 어쩌면 중요한 건 남은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건 오늘 하루를 그냥 흘려보낼 건지
아니면 아주 작게라도 다시 해볼 건지가 아닐까,
이부장은 그렇게 말하고 숟가락으로 밥을 한 번 더 비볐다

식당 밖으로 나오는 길, 엘리베이터에 얼굴이 비쳤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눈가도 예전 같지 않고, 어깨도 조금 굽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얼굴이 싫지만은 않았다.
끝난 사람의 얼굴 보다는
아직 하나쯤 시작해볼 수 있는 사람의 얼굴 같았다.
나이 먹고 꿈꾸면 좀 이상한가요?
이상한 건 아직 살아 있는 마음을
너무 일찍 접어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절대 늦은 때란 없다
다만 스스로 끝났다고 말하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