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말생 #12
지금 당장, 조금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똑같은 하루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
※ 구내식당, 식판 위에서 태어난 논픽션 이야기입니다
점심시간이었다.
구내식당 오늘의 메뉴는 돈까스
구내식당 돈까스는 바삭함을 기대하면 조금 눅눅하고,
별 기대 없이 소스를 듬뿍 올려 먹으면 또 제법 맛있다.
실장님, 김주임과 나란히 앉아 말없이 돈가스를 자르고 있었다.
그러다 김주임님이 툭 말했다.
“요즘은 뭘 해도 별로 재미가 없어요”
내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주임님?”
“그냥 맨날 똑같잖아요
“회사 오고, 일하고, 집에 가고, 자고. 눈 뜨면 또 회사 오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직장인의 삶 아닌가요?”
실장님은 돈가스에 소스를 한 번 더 묻혔다.
“나는 뭔가 좋은 일이 딱 하나 생기면 좋겠네
여행을 간다든지, 돈이 생긴다든지”
김주임이 웃었다.
“로또 되면 바로 행복하시겠네요”
“그건 행복이 아니라 환희지”
다 같이 웃었다.
마침 점심시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식판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일단 가시죠. 행복 찾다가 지각하겠어요”
“그래, 행복은 퇴근하고 찾자”
우리는 웃으며 식당을 나왔다
🍴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 화면을 켰다.
메일을 보내고, 메신저에 답하고,
회의 자료를 만들려고 키보드를 와다다다다 치다 보니
점심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금세 잊었다.
그러다 잠깐 손을 멈췄다.
머리가 조금 답답해서 그냥 책상 옆 창밖을 봤다.
하늘이 정말 파랬다.
그 아래로 보이는 산도 한창 여름이라 온통 푸릇푸릇했다🌳

(실제로 찍은 사진.jpg)
매일 보는 풍경이었다.
어제도 있었고 그제도 있었고
아마 내일도 비슷하게 있을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참 유독 예뻤다
‘와… 좋다’
고작 1분이었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였고, 메신저 알림은 또 울렸고
퇴근 시간이 당겨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조금 전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때 점심시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행복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
아까는 대답을 못 했는데 지금 이 순간은 조금 행복한 것 같았다.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책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더 잘 발견한다는 이야기였다
빨간 자동차🚗를 사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빨간 자동차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원래 빨간 차가 이렇게 많았나?’
빨간 차가 하루아침에 많아진 게 아니다
원래 있었는데, 내가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생각났다
아, 이게 RAS였지

RAS(망상활성계, Reticular Activating System):
외부 자극 중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유의미한 정보만
걸러내어 의식 속으로 전달하는 신경 시스템.
🍴
RAS(Reticular Activating System)
결국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에서는 RAS를 우리가 매 순간 받아들이는 수많은 자극 가운데
어디에 집중할지를 조절하는 뇌의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RAS를 설명할 때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떤 지역에 관심을 가지면 평소에는 지나쳤던 뉴스에서도 그 지역 이름이 보이고
처음 알게 된 단어 하나가 이상하게 며칠 동안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처럼
우리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을 더 잘 발견한다.
그렇다면 행복도 그런 게 아닐까?
행복한 일이 생겨야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을 찾으려고 마음먹는 순간
원래 내 하루 안에 있던 행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아까 창밖의 하늘처럼 하늘은 오늘 처음 파래진 게 아니었다.
산도 오늘 갑자기 초록색이 된 게 아니었다.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단지 내가 오늘 봤을 뿐이었다
🍴
생각해보니 그날 하루에도 좋은 일은 꽤 있었다.
아침에 마신 아이스라떼가 맛있었고
점심에 돈가스를 먹으며 웃었고
친한 동료에게 온 메시지에 피식 웃었고
창밖에는 내가 좋아하는 파란 하늘이 있었다.
다 있었는데 나는 한 번도 그걸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조금 더 대단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행복은 늘 자꾸 뒤로 밀렸다.
이것만 끝나면,
조금 덜 바빠지면,
원하는 걸 이루면,
그때 행복해야지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오늘은 언제나 행복하기 전날이 된다.
행복한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다 보면
이미 내 앞에 있는 행복은 자꾸 지나쳐버린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행복도 조금은 찾아야 보인다
힘든 일이 있다고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바쁘다고 좋은 순간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피곤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바쁘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아직 원하는 곳에 도착하지 않았어도 행복할 수 있다.
🍴 다음 날 점심
실장님과 주임님을 다시 만났다.
김주임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실장님, 어제 행복은 찾으셨어요?”
실장님이 웃었다
“찾았지"
“뭔데요?”
“퇴근해서 씻고 에어컨 틀고 누웠는데 좋더라”
내가 웃었다.
“실장님, 하루 만에 행복 기준이 많이 낮아지셨는데요?”
“그러게”
실장님이 밥을 한 숟가락 먹다가 말했다.
“근데 찾아보니까 있긴 있더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어제 창밖을 바라보던 내가 생각났다.
찾아보니까 있긴 있더라
행복도 RAS처럼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에 따라 더 잘 보이는 것이라면
나는 행복한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이미 내 하루에 있는 행복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밥말생 끝

